MS, 우크라 GSC사와 협업한 제작 다큐 공개…”체제보다 사람이 먼저”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게임 개발은 이제 우리에게 저항의 수단이 됐죠.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단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우크라이나 게임 개발사 ‘GSC 게임 월드'(이하 GSC)에서 슈팅 게임 ‘스토커(S.T.A.L.K.E.R.) 2: 초르노빌의 심장부’를 만들고 있는 제작진은 러시아에 게임을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3일 저녁(한국 시간) GSC와 협업해 제작한 1시간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전쟁 게임: 스토커 2 제작기’를 공개했다.
다큐멘터리는 GSC 제작진이 직접 초르노빌(체르노빌의 우크라이나어 표기) 폐허를 찾아 무너진 채 방치된 집 속 가족사진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든 게 얼마나 갑작스럽게 끝났을지 실감했어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죠.”
말이 끝나자 화면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으로 바뀐다.
GSC가 2018년 처음 발표한 차기작 ‘스토커 2’는 2007년 첫 작품이 나온 ‘스토커’ 3부작의 정식 후속작이다.
스토커 시리즈는 초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후 각종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통제 구역 일대를 탐험하며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군인·용병·도적 집단과 방사능 영향으로 생겨난 돌연변이 괴물로부터 살아남는 게임이다.
제작진은 GSC 개발자들의 친척을 비롯한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희생된 체르노빌 참사가 “소련이 만든 발전소에서 소련의 잘못된 결정으로” 일어났음을 강조한다.
예브겐 그리고르비치 GSC 대표의 아내이자 회사에서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는 마리아 그리고르비치 씨는 “어떤 체제도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다”며 항상 사람이 우선이 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르비치 부부의 이런 신념은 2021년 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빛을 발했다.
GSC는 전쟁이 발발하기 수개월 전부터 회사 근처에 대형 버스 여러 대를 대절해 운전기사를 24시간 대기시켜 놓고, 언제든 직원과 가족들이 서부 접경지대로 피난을 갈 수 있게 준비했다.
그 덕분에 절반이 넘는 직원이 러시아의 침공 직전 무사히 안전한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버스에 오르는 대신 가족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키이우에 남았다. 몇몇 직원들은 의용군에 자원해 전쟁터로 떠났다.
전쟁이 길어지며 2022년 출시 예정이던 ‘스토커 2’ 개발은 무기한 연기됐지만, 소수의 제작진은 공습경보가 울리는 와중에도 사무실에 남아 게임을 만들었다. GSC는 결국 체코 프라하로 사무실을 옮겨 안전한 환경에서 개발을 이어 나갔다.
GSC는 지난해 ‘스토커 2’의 러시아어 지원과 러시아 판매를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스토커’ 시리즈 팬들은 격렬히 반발했고, 해커들은 서버 공격으로 빼낸 게임 자료와 영상을 유포하며 GSC를 공격했다. 어떤 이들은 GSC 개발자들의 자택 위치를 알아내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여기서 꺾이지 않고 작년 독일에서 열린 ‘게임스컴 2023’에 ‘스토커 2’를 출품, 전 세계에서 모인 팬으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제작진은 “스토커의 모든 이야기와 요소 뒤에는 끝까지 해내기 위해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말미에는 ‘스토커 2’ 제작 도중 전사한 개발자 볼로디미르 예조우, 성우 올렉시 힐스키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인들을 기리는 문구도 들어갔다.
여러 차례 거듭된 연기 끝에 개발을 마친 ‘스토커 2’는 오는 11월 20일(현지 시간) 전 세계 동시 출시를 앞두고 있다.
juju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