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개막작 중 첫 OTT 영화…11일 넷플릭스로 공개
(부산=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넷플릭스 영화 ‘전,란’은 “천하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혁명적 주장을 펼쳤던 조선 선조 때 사상가 정여립이 처형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기본 구도가 인간의 자연적 감성과 봉건적 신분제의 모순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강렬한 오프닝이다.
2일 막을 올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은 선조가 다스리던 조선의 권세 높은 집안 자제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영은 노비의 신분이긴 해도 검술이 뛰어나 종려에게 무술 사범 노릇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천영과 종려 사이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이 싹트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도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전쟁통에 천영은 의병을 이끄는 검객으로 성장하고, 종려는 왕을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무사가 된다. 집안 노비들의 반란으로 가족을 잃은 종려는 그 배후에 천영이 있다고 믿으면서 복수의 칼을 간다.
‘전,란’은 화려한 검술 액션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180㎝를 훌쩍 넘는 강동원이 춤을 추듯 장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시원시원하다.
잿더미가 된 집에서 천영과 종려가 달빛을 받으면서 벌이는 칼싸움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하다. 왜장을 연기한 정성일의 정교한 검술을 천영과 종려의 검술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속도감과 박진감이 있는 이야기 전개도 ‘전,란’의 강점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빠져 지루하게 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다만 시대의 모순으로 빚어진 천영과 종려의 비극이 얼마나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지는 의문이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쌓은 우정과 인간적 유대를 좀 더 깊이 있게 그렸더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에서 오는 아픔도 절절하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 중 천영은 종려에게 검술을 가르치면서 “네 칼엔 분노가 없다”고 지적한다. 역으로 ‘전,란’은 인간의 자연적 감성을 짓밟는 사회 제도에 대한 분노는 뜨겁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이야기의 정교함은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김상만 감독이 연출한 ‘전,란’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유려한 대사와 이따금 튀어나오는 유머에서 박 감독의 손길이 느껴진다.
관객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무능한 임금 역의 차승원, 의리와 투지가 넘치는 의병을 연기한 김신록, 리더십 있는 의병장 역의 진선규가 강동원, 박정민, 정성일과 이루는 앙상블도 좋다.
김 감독은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 미술감독 출신으로, 연출작으로는 ‘걸스카우트'(2008)와 ‘심야의 FM'(2010) 등이 있다.
‘전,란’은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는 최초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영화계에서 OTT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가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 작품은 이달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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