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발달 심리학자가 쓴 신간 ‘선악의 기원’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은 예로부터 첨예한 대립 관계에 있었다. 맹자는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예로 들며 인간은 선하다고 했다. 순자는 아기의 이기심을 직격하며 인간 본성은 악하다고 결론지었다. 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양보란 걸 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禮)와 같은 훈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둘러싼 논란은 수천 년 동안 동서양 곳곳에서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폴 블룸은 신간 ‘선악의 기원'(21세기북스)을 통해 이 오랜 논쟁에 동참한다. 그는 토머스 홉스, 애덤 스미스, 토머스 제퍼슨 등 선배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 도덕성의 뿌리와 진화 과정을 탐구한다.
저자는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를 살펴보고자 교육받지 않은 아기를 직접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한 살배기 아기에게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인형극을 보여줬다. 극 중에서 가운데 인형이 오른쪽 인형에게 공을 굴리자 이 인형은 다시 공을 되돌려줬다. 그다음에는 왼쪽 인형에게 공을 굴렸는데, 그만 공을 들고 달아나 버렸다.
인형극이 끝난 후, 저자는 오른쪽과 왼쪽의 두 인형을 무대에서 내려 아기 앞에 놓아두었다. 각 인형 앞에는 사탕을 하나씩 놨다. 아기는 공을 들고 도망간 ‘못된’ 인형의 사탕을 가져갔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기는 몸을 앞으로 속이더니 못된 인형의 머리를 후려쳤다.
저자는 이 실험을 근거로 아기들이 공을 돌려주는 착한 인형과 공을 훔치는 못된 인형을 구분할 줄 안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에 더해 3개월짜리 아이들조차 ‘돕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아기들이 ‘착한 사람에게는 끌릴 뿐 아니라 못된 사람에겐 반발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기는 낯선 사람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집단 외에는 배타적인 모습을 띤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이는 인간의 편협함과 잔인함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도덕성의 씨앗이 우리 안에 이미 심겨 있다고 말한다. 마치 팔과 다리처럼, 공감, 동정심, 정의에 대한 감각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씨앗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이성적 진화’가 필요하며, 교육과 사회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아기가 지닌 가능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아기의 순수한 도덕성을 지켜주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최재천·김수진 옮김.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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