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괴물’이 독립영화?…”사회적 맥락은 영화 이해의 첩경”

영화전문기자가 소개하는 영화들…신간 ‘다가오는 영화들’

영화 ‘괴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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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 종합예술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 음악, 텍스트를 넘나들면서도 영화가 제작된 국가의 사회적 맥락과 현지 문화를 담고 있어서다. 만약 영화가 제작된 국가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전문가들이라도 피상적 이해에 그칠 수 있다.

한국일보에서 오랫동안 영화를 담당한 라제기 기자도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가 영국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 봉준호의 ‘괴물'(2006)을 블록버스터라고 소개하자, 영국인 교수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고작 1천만 달러밖에 제작비가 들지 않은 ‘괴물’은 블록버스터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저예산이었기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이 있었다면서 ‘괴물’을 독립영화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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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기자는 그때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뿐만 아니라 산업적 특징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영국인 교수는 한국의 영화 산업 규모에 대해 잘 알지 못한 데다가 1980년대부터 이어온 국내의 반미 문화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괴물’이 반미를 드러낸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정서가 녹아있는 측면이 있다.

사회 문화적 무지로 인한 오해는 영국인 교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국내 영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라 기자도 한편의 우화 같은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에드워드 양 감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영화가 대만 근대사를 깊이 있는 수준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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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기자가 쓴 ‘다가오는 영화들'(북트리거)은 영화를 소개하는 또 하나의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 리뷰를 모은 책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개봉돼 많은 사랑을 받았거나 의미 있는 영화들을 엄선해 균형·정의·의심·인생·오만과 편견·연결이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나눠 소개한 책이다. 영화의 에센스라 할 수 있는 ‘감정’을 다루면서도 영화에 내재한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가령,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2020)은 우리 사회의 학력·학벌 문제를 정조준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삼진그룹은 유니폼부터 고졸과 대졸 사원을 차별한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고졸은 승진하기 어렵다. 결혼 후 임신이라도 하면 퇴출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정작 비윤리적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학벌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영화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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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시인이었던 윤동주와 문학보단 조선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면서 독립운동에 나선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동주'(2016)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부유하는 청춘의 마음을 그려 주목받았다. ‘레이디 버드'(2018)는 미국 서부의 소도시에서 자란 10대 소녀가 화려한 동부 도시에 있는 대학 진학을 꿈꾸다가 진정한 가족애를 발견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장영화다. 각각 식민지, 미국 서부의 특수성을 매개로 독특한 감성을 전하는 영화들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그래비티'(2013)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찾아내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댓 원스'(2022)에선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우연과 상상'(2022)에선 현대인의 외로움을 떠올린다.

책은 정의, 자유, 인권 등 추상적 내용을 다루기에 그 내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쉬운 문장으로, 상세하게 해설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은 높지 않은 편이다.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중·고교생들이라면 쉽게 읽어 내려갈 만하다.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의 후속편 격인 책이다.

236쪽.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