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깜짝 변신 화제…”치유가 목적이라 작가 계약 제안은 거절”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20년 넘게 연기를 하면서 항상 수작에 목말라 있었고, 훌륭한 캐릭터를 기다려왔는데 이번 작품이 시작점인 것 같아요. 첫 단추를 끼웠다고 할까요?”
배우 고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블랙아웃'(이하 ‘백설공주에게’)을 두고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평가했다.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종영 기념 인터뷰를 위해 기자들을 만난 고준은 “사실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말을 잘 못 하는데, 제가 출연한 작품 중에선 처음으로 이번 작품을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누군가 ‘너 어떤 작품 나왔어?’ 하고 물어보면 ‘백설공주에게’에 나왔고 노상철 역할을 맡았다고 대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고준은 ‘백설공주에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 선이 굵은 인상을 남기는 연기로 드라마의 성공에 기여했다.
‘백설공주에게’는 동명의 독일 소설(원제 ‘Schneewittchen muss sterben’)이 원작이다. 고교 동급생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11년 동안 옥살이를 한 주인공 고정우(변요한)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을 다룬 범죄 스릴러다.
고준은 고정우가 범인으로 지목됐던 살인 사건을 11년 만에 재수사하는 형사 노상철을 연기했다. 광역수사대 형사였던 상철은 범죄자들을 과잉 진압하다가 드라마의 주무대인 무천의 경찰서로 좌천되고, 비슷한 시기 고정우가 출소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준은 “형사인 노상철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과거 자신이 잡았던 범죄자에게 보복으로 살해당한다는 설정”이라며 “그러다 보니 세상 범죄자를 싸잡아 미워하고 과잉 진압하게 된다”고 인물을 소개했다.
이처럼 범죄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가진 노상철은 살인죄로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고정우를 적대적으로 대하는데, 이후 무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며 진범이 따로 있음을 알아채고 정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백설공주에게’는 중반부터 고정우와 노상철 두 사람이 콤비를 이뤄 진범을 찾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고, 2%대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최고 8.8%로 치솟았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모든 배우의 연기력이 출중해 완성도가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노상철은 자신의 아픈 과거 때문에 범죄자들을 향한 분노로 치를 떠는 인물이지만, 자신이 고정우를 오해했음을 인정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고정우의 누명을 풀어준 뒤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고준은 특히 변요한과의 호흡을 “실제 드라마 속에서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초반엔 요한이(변요한)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가 점점 가까워져 지금은 거의 친형제 같다”며 “고정우와 노상철이 점점 친해진 것과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실제 작품 속에서 관계가 멀면 멀리 지내고 가까울수록 실제로도 해당 역할의 배우와 가까이 지내려는 편”이라며 “그래야 현장에서 더 진짜처럼 나온다”고 덧붙였다.
고준은 또 “제 연기 방식은 무조건 상대 배우의 연기를 받아서 반응하는 방식이라 상대 배우와 ‘케미'(호흡)가 안 좋을 수 없다”며 “연말 시상식 때 (변요한과) ‘베스트 커플상’을 받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로 데뷔한 이래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꾸준히 활약하던 고준은 2020년 KBS 2TV 드라마 ‘바람피면 죽는다’ 이후 약 4년 만에 시청자를 만났다. 2022년 촬영을 마친 ‘백설공주에게’ 편성이 늦춰진 것도 한몫했다.
고준은 공백기 동안 특별한 소식을 전해 화제가 됐다. 화가로 변신해 올해 초 미국 뉴욕 소호 파크 웨스트 갤러리에서 열린 ‘소호 갓 서울'(SoHo’s Got Seoul) 전시에 작품을 낸 것.
그는 “십자인대가 끊어져 두 번이나 수술받으면서 공백이 길어지고 작품 출연도 할 수 없었다”며 “병상에 누워 있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는데, 미술 치료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그림을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고준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쭉 그림을 그려왔고, 배우 활동을 하는 동안 쉬었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붓을 손에 들었다고 한다. 전시장에 걸린 고준의 그림 여덟 점 가운데 일곱 점이 팔렸다.
다만 고준은 “사실 작가로 계약하자는 제안도 받았는데 거절했다”며 전업 화가로 활동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유가 목적이었고, 본업이 화가인 분들이 정말 힘들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 어디 가서 함부로 ‘제가 그림 그린다’고 말 못하겠더라”며 미소 지었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