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픽!] 신들이 아닌, 인간들의 전쟁…’카산드라’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흔히 ‘신들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시인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을 헤라와 아테네, 포세이돈, 아레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등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각각 그리스와 트로이의 편에 서서 벌인 대리전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신들이 잃은 것이 자존심이라면, 인간들은 자유와 목숨을 잃었으니, 그저 신들의 전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불공평할지도 모른다.

웹툰 ‘카산드라’
[카카오웹툰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카산드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리아드를 재해석해서 온전한 인간들의 서사시로 풀어낸 웹툰이다.

주인공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이자 불길하지만 언제나 들어맞는 예언만 내놓는 신녀다.

사실 카산드라가 하는 예언은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내놓는 일종의 정보 분석에 가깝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신의 목소리를 빌렸다고 해도 카산드라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그녀가 아무리 반대해도 어린 동생 파리스는 그리스 사절단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데리고 돌아온다.

카산드라는 단번에 헬레네가 트로이에 전쟁을 몰아올 수 있는 존재라고 보고 내쫓으려 들지만, 헬레네도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헬레네가 일리아드 원전 속에서는 그저 모두가 탐내는 미인으로만 표현됐다면, 웹툰에서는 전쟁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파리스에게 접근하고 트로이에 내분을 일으키는 지략가로 묘사됐다.

어떻게든 트로이를 지키려는 카산드라와 무슨 수를 써서도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촉발하려는 헬레네는 끊임없이 수 싸움을 벌인다.

여기에 책임감 강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카산드라의 진가를 알아보는 호위병 데메우스, 전략에 능한 오디세우스와 불사신처럼 싸우는 아킬레우스 등 여러 캐릭터가 더해지면서 3천년 전 고대 도시 트로이를 배경으로 거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웹툰 ‘카산드라’ 한 장면
[카카오웹툰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총 160화가 넘는 이 이야기에 신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작중 사람들이 믿는 신화는 모두 카산드라나 헬레네 등 지배층이 여론을 장악하고,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에 불과하다.

카산드라는 신권 장악을 위해 태양신 아폴론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예지력을 얻었으나, 그의 구애를 거절해 설득력을 잃게 됐다는 비운의 예언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헬레네는 파리스 왕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헬레네를 얻은 축복받은 인물이라는 소문을 낸다.

신화를 걷어내고 나자 그 뒤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인간들, 그 가운데서도 막후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카산드라와 헬레네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지만, 사실 서로를 가장 제대로 이해하는 사이기도 하다.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카산드라와 상냥한 얼굴을 가장하고 세상 모두를 증오하는 헬레네는 모두 똑똑하면서도 외로운 인물이다.

작중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고 공주에서 노예로 전락하기도 한 카산드라처럼 웹툰 ‘카산드라’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2012년도에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했지만, 2014년 집안 사정으로 인해 플랫폼 연재를 중단하고 개인 블로그에서 비정기적으로 이야기를 이어왔다.

이 당시 사정은 이하진 작가의 자전적인 웹툰 ‘도박중독자의 가족’에서 풀어낸 바 있다.

이처럼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미완의 웹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약 9년 만인 지난해 다시 카카오웹툰으로 복귀해 정식 연재에 나섰으며 최근 총 161화로 이야기를 완결지었다.

웹툰은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