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한국문학번역원장 지내며 문학 진흥·번역 지원 기여
“노벨상도 압축성장…번역원 예산 늘리고 번역대학원 설립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중일 문학 심포지엄 때면 일본과 중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둘씩(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오에 겐자부로, 중국은 모옌·프랑스로 망명한 가오싱젠)이나 있는데 우린 없었죠. 그게 현실이 됐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도종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한국 문학에 봄을 부르는 일을 했어요. 그래야 제비도 오고 숲도 우거지고 강물도 흐르죠. 한국 문학 생태계를 조성해야 진짜 세계 문학이 됩니다.”(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감회가 남달랐던 두 사람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출신이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도종환 전 의원과 올해 5월 3년간의 한국문학번역원장 임기를 마친 곽효환 전 원장이다.
시인이기도 한 두 사람은 정치인과 기관장 시절,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번역원 예산 증액과 번역인력 양성에 힘을 모았다. 도 전 의원은 2015년 문학진흥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키고, 2022년 번역대학원대학 설립 근거를 담은 문학진흥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번 기회에”란 말을 거듭하며 “한국 문학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기틀, 토대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 속 문학이 문화국가 잣대…번역인력 양성해야”
그러려면 한국문학의 번역출판 지원과 번역인력 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는 번역원 예산이 지난해 약 150억원에서 올해 130여원으로 삭감된 뒤 내년 정부안에서도 140억원에 머물렀단 점이다. 이중 내년 번역인력 양성 예산은 2022년과 비교할 때 41억원에서 21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도 전 의원은 “어린 시절 앙드레 지드, 생텍쥐페리,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으며 프랑스는 문화국가라고 생각했듯이 본격문학이 세계에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문화국가의 잣대가 된다”며 “번역원 예산을 이번 기회에 10배는 늘리고 5년, 10년 단위 계획을 세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 속기록을 보면 그는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2016) 이후 우리 문학계 성과를 강조하며 번역원 예산 25억원을 증액해야 한다고 문체부 장관에게 촉구했다.
도 전 의원은 “특히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 같은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곽 전 원장과 3년간 번역대학원대학을 만들어 외국 젊은이들이 학위도 받고 자기 나라에서 대학교수도 하면서 제대로 번역할 수 있게 하자고 했지만 예산이 끝내 담기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출발해 오스카상까지 갔듯이 (정부와 국회가) 번역원 아카데미를 대학원으로 어떻게 키울지, 번역청까진 아니어도 관련 기구를 만드는 것도 고민해야 합니다.”(도종환)
곽 전 원장도 “번역이 없었다면 노벨문학상이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라며 “하지만 번역인력 양성 예산은 삭감됐고 문학진흥정책위원회도 폐지됐다. 기적 같은 축복 속에 겉모습은 화려한데 내부 풍경은 씁쓸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번역서 일본의 3분의 1 수준…국민 독서율 높여야”
두 사람은 인문학이 경시되고, 성인 10명 중 약 6명이 연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풍토에서 일궈낸 성취가 일회성 잔치에 그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책 읽는 문화가 살아나고, 한국의 좋은 작가들이 꾸준히 해외에 소개되는 동시에 ‘한강 키즈’로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 전 의원은 “지난해 교육부 예산 심의 때 대학의 연구개발(R&D) 예산 복원 작업을 하는데, 인문 분야는 딱 1건인데도 늘리지 않았다”며 “이제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 사용 금지’라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청년들 중에서 한강 같은 꿈을 키우는 ‘한강 키즈’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 전 원장은 “한국이 압축성장의 나라인데, 노벨상도 압축성장”이란 점을 지적하며 “대산문화재단과 번역원 두 기관이 지원한 번역서가 3천~3천500종 정도인데 아직 일본의 10분의 1 수준으로 추산된다. 소위 가능성 있는 몇몇 작가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한강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작가라고 하지만 한국 최고의 작가라고 말하지 않듯이 말을 바꾸면 황석영, 이승우 등 많은 작가가 있다”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이 됐다는 인식으로 직행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곽 전 원장은 “마흐푸즈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이집트 문학이, 데릭 월컷이 받았다고 세인트루시아 문학이 세계 문학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먼저 독서율을 높여야 해요.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이 지난해 1.7권으로 조사 이래 최저였죠. 지금 책이 팔린다는데 1~10위가 한강이니 이 특수가 지나고 나서가 문제죠. 한강 작가가 봄을 불러왔으니 세계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 해요.”(곽효환)
국회에서 인문 서적과 정치 고전 등 책 읽는 의원 모임을 투 트랙으로 운영한 도 전 의원은 정치권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정치권이 지구·지방 소멸, 저출생 등 학계의 담론을 받아 어젠다를 논의해야 하는데 담론이 사라졌다”며 “최재천 교수의 저서 ‘숙론’에 나온 말처럼 지금은 ‘무엇이 옳은가를 논하지 않고 누가 옳은가’로 싸운다. 그러면 길을 잃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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