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잉그리드 로베인스가 쓴 ‘부의 제한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22년 기준 세계 최고 부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다. 포브스 추정액에 따르면 그의 자산 규모는 2천190억달러에 달한다. 20세부터 65세까지 45년 동안 시급으로 약 200만달러(27억5천만원)를 받아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머스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재산을 불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분석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027년 무렵이면 현재의 4배가 넘는 1조달러(1천33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의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토마 피게티의 기념비적인 저서 ’21세기 자본'(2014)을 보면 부의 격차는 19세기 말에 가장 컸으나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줄어들었다가 1970년대 말 이후로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웃돌고, 경제성장률이 정체된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피케티는 책에서 정치적 개입이 없다면 극소수가 거의 전부를 갖고 대다수는 거의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새로운 준봉건시대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케티의 경고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부자가 돈을 쓸어 담고 있어서다. 옥스팜 분석에 따려면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전 세계 상위 1%는 나머지 99%가 얻는 소득과 부의 두 배 이상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부의 편중이 강화되는 상황을 해결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네덜란드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잉그리드 로베인스는 주장한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부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간 ‘부의 제한선'(세종)에서 정치적 제한선으로 순자산 기준 1천만 달러를, 윤리적 제한선으로는 100만 달러를 설정한다. 정치적 제한선은 개인이 더는 축적할 수 없게 사회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기준이고, 윤리적 제한선은 돈이 더 있다고 해도 후생을 크게 늘리지 못하는 기준을 의미한다.
저자는 극도로 많은 부가 도덕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환경적·심리적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없을뿐더러 그 부를 가지고 있는 부자들도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부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빈곤에 묶어두며, 부자에게 득이 되는 불공정한 정책을 양산하고, 민주주의를 잠식하며 지구를 불태운다”고 지적한다.
다만 부에 제한을 두기 전에 무상교육, 의료, 공공서비스, 최저임금제 등 사회안전망이 탄탄해야 한다면서 그런 전제하에 일정 금액 이상의 부와 소득에는 세율이 100%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퍼 부자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잉여 재산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아주 많다. 그리고 그 돈을 가져와도 슈퍼 부자들의 후생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이 약간 감소한다 해도 다른 이들이 얻을 막대한 이익과 공공재 제공에서 나올 이득으로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다.”
김승진 옮김.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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