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새벽 4시 해외 축구를 보고 이른 아침 잠자리에 든다. 오후 1~2시쯤 눈을 떠 하품하는 고양이를 보며 커피 한잔. 평화로운 제주 생활을 누리던 강산에(본명 강영걸)는 불현듯 깨닫는다.
“어? 가만있어봐라. 이거 30주년인데?”
그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봤지만 쉽지 않았다. “앨범을 탁, 만들어서 ‘짜잔’ 하고 싶었지. 근데 곡이 안 만들어지니…” 강산에 데뷔 30주년이었던 2022년은 그렇게 어물쩍 흘러갔다.
올해는 데뷔 31주년이다. “그래도 올해는 꼭 나를 기념해야겠다”고 생각한 강산에는 내달 12일 31주년 기념 콘서트 ‘+1 재회’를 연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강산에는 여유로운 손짓과 경상도식 억양을 섞어가며 공연을 열게 된 계기를 느긋하게 풀어냈다.
편안한 차림새와 치아를 훤히 드러내는 미소. 그는 30년 세월 동안 모나고 거친 저항의 아이콘에서 장난기 밴 중년의 아티스트로 변해있었다.
1992년 1집 ‘강산에 Vol.0’으로 데뷔한 강산에는 ‘…라구요’와 ‘넌 할 수 있어’ 등 히트곡을 쏟아내다 1996년 자신이 “물에 뜬 기름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1998년 대표곡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낸 뒤로 여행을 떠나 답을 찾아 나섰고, 2000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몰랐는데 변했더라고요. 그때 눈빛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삐딱한 아티스트에서 둥글둥글한 평화주의자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팬들이 아쉬워하는 지점은 2001년 다시 음악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의 음반 발매 소식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2010년부터는 미니 음반 ‘키스'(KISS)와 싱글 ‘가만있어봐라’를 내놓은 게 전부다.
“천성이 그래요. 세속적으로 얘기하면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고. 옛날에는 많이 내야 하는 줄 알고 2년에 한 번씩은 꼭 냈는데.”
그렇게 안락한 제주 생활에 취해있던 어느 날 그에게 ‘로큰롤’의 기운이 찾아왔다. 강산에는 10여년 전 호흡을 맞췄던 멤버들을 소집했다.
“용기가 좀 필요했지. ‘야, 보고 싶다. 같이 하자’ 하고.” 그렇게 불러낸 이들이 고경천(키보드)·최만선(기타)·민재현(베이스)·이기태(드럼)로 구성된 ‘드림팀’이다.
오랜 동료들과의 재결합은 강산에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 그래 이 맛이야.”
인터뷰 도중에도 강산에는 전날 합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황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뷔 초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은 모습이었다. “합주 후에 한잔하면서 다들 그 얘기를 하더라고, 그리웠다고.”
다만 강산에는 “로큰롤을 하고 싶다는 게 성격이 다시 삐딱해지고 그런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가끔 제주도 오름 한번 올라갔다 오는 집돌이가 됐다. 몸시계는 유럽에 맞춘 채 ‘축덕'(축구 덕후) 라이프를 즐긴다. “너무 캄(calm)해졌고, 그냥 평화로운 게 좋고 그래요.”
강산에는 스마트폰을 메모장 삼아 아이디어를 끄적이고, 기타를 가지고 놀다 곡으로 연결 짓기도 하며 여전히 ‘천성’에 맞게 음악을 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 깃발 꽂아야겠다는 이런 게 없어서” 그렇단다.
이렇게 쌓아온 곡들은 현재 편곡 작업을 거치고 있다. 조만간 신곡을 차례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며 슬쩍 보여준 가사들은 앞선 곡 ‘명태’나 ‘성의김밥’처럼 그의 삶이 배어 있었다.
강산에는 가수를 해야겠다 처음 결심한 순간을 회상하면서도 ‘한국적 맛을 내는 가수’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비유를 들었다.
“이 촌스러운 세상에서 김칫국물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하얀 벽을 보면 함부로 못 하잖아. 근데 뭐가 튀어있으면 쓱 묻히기 쉽잖아. 재미없는 세상을 좀 재밌게 해줄까, 한 거지.”
그는 “인생에서 그런 노래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거죠.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고”고 했다.
‘이미 그런 곡을 만들지 않았냐’는 말에는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줬다”며 손사래를 쳤다. “참 신기한 게 곡이 살아서 움직여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라고. 지가 살아남은 거야. 내가 한 게 없어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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