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동일본 대지진 후 ‘말 잃은 소녀’ 캐릭터 구상”

영화 ‘키리에의 노래’ 개봉 기념 방한…”韓팬, 인생의 힘과 지지 돼”

“日, 애니에 밀려 실사 영화 만들기 쉽지 않아”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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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키리에의 노래’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소녀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분)가 음악으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키리에는 어릴 적 쓰나미에 휩쓸려 가족을 모두 잃은 뒤부터 말소리는 크게 내지 못하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우렁찬 소리를 내는 독특한 캐릭터다. 말 대신 노래로 가슴속 한을 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개봉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이와이 감독은 3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뒤 말을 잃은 소녀가 오사카를 헤매는 이미지가 단편적으로 떠올랐다”고 캐릭터 구상 배경을 밝혔다.

이와이 감독은 지진 발생 지역인 센다이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대지진 후 희망을 이야기하는 노래 ‘꽃이 핀다’를 작사하고 10년간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일본인들의 치유를 도모했다. 지진 이듬해에는 단편 소설을 집필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연출한 영화가 ‘키리에의 노래’다.

“노래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와이 감독은 영화의 상당한 분량을 길거리 공연 장면에 할애했다. 감독판은 총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우리나라 개봉 버전은 2시간가량으로 편집했다.

이와이 감독은 “1시간은 이야기, 1시간은 콘서트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웃었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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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장면이 많아진 건 키리에 역을 맡은 아이나 디 엔드 덕이다. 이와이 감독은 당초 캐리에를 노래하기는 하지만, 그리 뛰어난 가수는 아닌 사람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나 디 엔드가 키리에 역에 캐스팅되면서 스토리가 바뀌었다.

이와이 감독은 “원래 키리에는 주인공도 아니었지만, 아이나를 보고서 꼭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아이나 디 엔드는 영화 속 노래 중 여섯 곡을 직접 썼다. 그러나 연기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이 감독은 “아이나의 무대를 봤을 때 엄청난 걸 가진 사람이라 생각해 연기도 문제없겠다고 생각했다”며 “철없는 여고생을 연기할 수 있을까 잠깐 걱정하기도 했지만, 촬영하자마자 걱정이 사라졌다”고 떠올렸다.

이어 “아이나의 연기에 100% 만족한다. 그러나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생각하면 앞으로 보여줄 게 1천%는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키리에의 노래’는 앞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다. 예매 시작 3분 만에 전 회차가 매진되는 등 한국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최근 극장가 상황이 녹록지 않고 일본 음악 영화라는 진입장벽도 있지만, 지난 1일 정식 개봉 이후 사흘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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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감독은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하나와 앨리스'(2004),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5) 등 수많은 명작을 통해 한국에도 탄탄한 팬덤을 쌓았다. 특히 ‘러브레터’의 경우 일본에서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청춘 멜로 영화의 정석으로 꼽힐 만큼 사랑받는다.

이와이 감독은 1999년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을 맞아 방한한 당시를 떠올리며 “그땐 신인 감독이었는데도 팬들이 열광적으로 맞아줬다. 이후 인생에서 강력한 지지와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러브레터’ 같은 작품을 또 만들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다”면서 “제 속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며 웃었다.

이와이 감독은 배우 배두나와 단편 ‘장옥의 편지’를 찍은 인연도 있다. 배두나는 이와이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키리에의 노래’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참여한다.

“기회가 된다면 배두나씨와는 장편 영화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이와이 감독은 “서울에 거의 7년 만에 오게 됐는데, 다음번엔 촬영을 위해 오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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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데뷔 이후 30여년간 일본 영화계에 몸담은 그는 일본 내 실사 영화의 상업적 한계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그는 “한국은 만화 문화와 영화 문화가 잘 융합돼 있는데, 일본은 두 문화에 괴리가 있어 안타깝다”며 “애니메이션에 비해 실사 영화 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어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기술이 더 발달할 것”이라면서 “(적은 예산으로) 상상한 것을 누구나 쉽게 만드는 시대가 올 거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