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PD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느끼며 위로받길”

“마카롱처럼 달진 않지만, 몸에 좋고 맛있는 쑥개떡 같은 작품”

시즌 2도 고려…섭식장애, 리플리증후군 등 다루지 못한 병 많아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재규 PD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정신병동에 입원해있는 대사 없는 단역 캐릭터들의 프로필도 상세하게 정리했어요. 환자 히스토리와 차팅 기록 등을 모으니 책 한 권 분량이었죠.”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병동에도’)는 커튼이 없어서 아침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다.

알몸으로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했다는 조울증 환자, 버거운 현실을 견디지 못해 게임 속 세계로 숨어버린 망상증 환자, 남을 챙기느라 자신을 잃은 지 오래인 우울증 환자까지. 각자의 사연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신병동에도’ 이재규 PD는 “선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면이 있다는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며 “지나치게 따뜻해서 동화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런 시선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병동에도’는 이 PD의 전작 ‘지금 우리 학교는'(이후 ‘지우학’)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좀비 떼와의 피 튀기는 사투를 그려낸 넷플릭스 히트작 ‘지우학’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날카로운 현실 고발 메시지 등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이 PD는 “자극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했다”며 “그래서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우리 작품이 마치 쑥개떡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카롱 같은 디저트 옆에 있으면 사실 손이 잘 안 가는데, 막상 먹어보면 정말 맛있거든요. 몸에도 훨씬 좋고요.”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신병은 ‘현대인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올 수 있고,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지만, 아직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PD는 “작품을 만들면서 수도꼭지 열린 것처럼 운 적도 많았다”며 “개인적으로 많이 치유 받은 만큼, 사람들도 ‘세상은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를 느끼면서 위로받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저도 우울증이랑 공황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아내가 밖에 나가서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사실이니까요. (웃음) 공황장애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어요. 비슷한 고통을 겪어봤기에 이야기에 더 공감됐죠.”

이 PD는 ‘불안하다’, ‘우울하다’ 등의 말로는 쉽게 표현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시각적인 연출로 묘사한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행위도 고역처럼 느껴지는 우울증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 깊게 빠져드는 늪에 빠져드는 듯한 연출로,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공황장애는 거대한 수조에서 숨이 막혀오는 듯한 연출로 표현해냈다.

이 PD는 “회차마다 적어도 한두 개 장면에 이런 시각적인 연출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는데 60∼70% 정도가 실제 반영된 것 같다. 편집 과정에서 덜어낸 장면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루기 조심스러운 소재인 만큼, 작은 디테일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전문적인 의학 장면을 촬영할 때는 현장에 실제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섭외해 자문했고, 역할 몰입도를 돕기 위해 대사가 없는 단역 배우들에게도 맡은 배역에 대한 꼼꼼한 설명을 제공했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재규 PD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PD는 “연출부가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의학 전문 서적을 보면서 병동 환자 한 명 한 명의 프로필을 만들고, 환자와 의료진 역을 맡은 모든 배우가 볼 수 있도록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환자인 것처럼 다른 배우들 앞에서 본인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며 “촬영 현장에서 의료진 배우들이 환자를 마주쳤을 때 자연스럽게 ‘땡땡 씨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몰입감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얀병원에도 섬세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이 PD는 “하얀병원은 정통적인 정신 병원의 이미지와 비슷하다”며 “창살도 두드러지게 담았고, 온통 하얀색인 병원의 색감도 차가운 느낌”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정다은(박보영 분)의 상태가 호전되면서부터 병원의 색감도, 장면에 담긴 배경 소음도 사소하게 달라진다.

이 PD는 “다은이 병식(자신이 병에 걸린 상태를 인식)이 생긴 후에는 같은 하얀 색이더라도 더 따뜻한 색감으로 담았고, 주변 환자들이 떠드는 소리도 넣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애정을 쏟아부은 작품인 만큼, 시즌2에 대한 욕심도 있다.

이 PD는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다”며 “섭식장애, 리플리증후군 등 아직 다루지 못한 병들이 너무 많다”고 얘기했다.

“정신 질환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치료받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병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주변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기를 바랐어요.”

co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