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납치극 ‘거래’ 감독 “기회가 있었다면 범죄 빠졌을까”

첫 드라마 연출 이정곤 인터뷰…”잘못된 방법 대가 치르는 결말”

드라마 ‘거래’ 이정곤 감독
[웨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주인공들이 본인의 실수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만, 이 젊은 친구들이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기회가 없었던 게 이들이 범죄에 빠지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달 27일 마지막회가 공개된 웨이브의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 ‘거래’는 경제적인 문제로 곤경에 처한 20대 청년 이준성(유승호 분)과 송재효(김동휘)가 부유한 집안의 고교 동창 박민우(유수빈)를 우발적으로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준성과 재효가 처한 어려움은 물론 각자의 잘못된 행동에 원인이 있지만, 이들은 젊은 나이에 미래의 모든 희망을 잃으면서 잘못된 선택에 이른다.

이 드라마를 연출한 이정곤 감독은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주인공들의 전사에 대해 많이 신경 썼다. 시청자들이 두 사람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함께 흔들리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물론 이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잘못을 늘 어깨에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거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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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갓 제대한 준성은 입대 전에 빌린 도박 빚이 불어나 ‘장기를 떼어내겠다’는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고, 의대생 재효는 학교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여러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학교에 뒷돈을 내지 못해 혼자 퇴학 처분됐다.

각자 복잡한 사정을 안은 준성과 재효는 학창 시절 그리 친하지 않았던 민우와 술자리를 갖게 되는데, 민우가 술기운을 못 이겨 쓰러지자 일단 재효의 반지하 자취방에 데려간다.

이때 잠든 민우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민우 어머니와 통화하게 된 재효는 갑자기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10억 원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우발적인 납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거래’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만,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 많은 부분에서 원작과 차이를 보인다. 준성과 재효, 민우를 제외한 다른 인물 대부분은 웹툰과 거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 감독은 “사실 드라마 기획을 시작할 땐 웹툰이 아직 앞부분만 나온 상태였고, 이는 드라마 첫 회 초반까지의 분량”이라며 “돈 때문에 친구를 납치한다는 설정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연출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 “과연 납치범인 주인공들에게 시청자들이 마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작품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거래’ 이정곤 감독
[웨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드라마에서 납치극은 계속 준성과 재효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민우가 탈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민우 어머니가 관련된 범죄집단이 두 사람을 쫓고, 준성과 재효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들이닥치는 일도 벌어진다.

결국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크게 다치기도 한다.

이 감독은 “어느 순간 준성과 재효의 납치극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들이 저지른 일이 범죄이고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울 만한 포인트를 넣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돈 때문에 납치극을 펼친 두 주인공은 결국 각자 원하던 것을 이루기는커녕 가진 것을 잃고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감독은 “드라마가 시작할 때 뭔가를 얻으려고 했던 각각의 인물이 결말에 가서는 오히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짚었다.

‘거래’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이 감독은 “이번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이라며 “그래서 20대 초반인 사람들을 여럿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여러 20대를 만나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얘기해줬더니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다면 괜찮지 않겠나’ 하는 반응이 많아서 ‘어라?’ 싶었다”며 “그만큼 청춘들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거래’
[웨이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감독은 그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영화 ‘낫아웃'(2021)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정재광), CGV 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등 3관왕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그에게 첫 시리즈물 연출 소감을 묻자 “드라마는 분량이 긴 만큼 한 작품에 영화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드라마의 매력이 커서 또 해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아울러 앞으로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에서 기존에 배우들이 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특히 유승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짜릿하다’고 평가한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유승호는 삭발한 머리에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등 이번 드라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 감독은 “다음 작품도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게 하고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