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수행, 밥은 생명의 선물”…절밥에 담긴 정관스님의 철학

무공스님 “미워하면 내가 고통받아…방향이 다를 뿐 틀린 건 없다”
새벽예불 마치고 싱잉볼 명상으로 마음 녹인 템플스테이

[영상] 사찰음식 명장 정관스님의 시그니처 메뉴 스토리

영상 취재 및 편집 = 이세원 기자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탁! 탁! 탁!…이 밥은 /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이 빚은 /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 (중략) / 온몸 온 마음으로 /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공양송)

10일 오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부속 암자인 천진암에서 기자들을 맞이한 정관스님은 음식이 완성되자 죽비를 세 차례 치고서 공양송을 선창했다. 템플스테이의 일환으로 마련된 저녁 공양 자리였다.

미슐랭 스타 셰프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요리사가 찾아와서 한 수 배운다는 사찰 음식 명장의 손을 거친 음식은 맛과 향이 빼어난 것은 물론이고 눈까지 즐겁게 했다. 허기를 달랠 끼닛거리라기보다는 공들인 예술품 같다는 느낌을 안겼다.

사찰음식 준비하는 정관스님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0일 오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스님이 사찰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보다 스님의 음식 철학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공양송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 생태 친화적 삶을 향한 간절함이 전해졌다.

정관스님은 “지금은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넘쳐난다. 적게 쓰고, 적게 먹는 것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만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사찰음식에서 (생명을 살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에 소개되면서 너무 화려하게 포장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통적이고 소박한 사찰음식을 되찾기 위해 메뉴를 재정립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찰음식을 소개하러 외국에 가면 통상 나물을 중심으로 세 가지 정도의 음식을 만든다.

미소짓는 정관스님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0일 오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스님이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다.

봄에 삶아서 갈무리해 둔 취나물, 가을에 잘라서 말린 애호박,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는 식이다. 여기에 과일 등을 곁들인다.

참가자들에게 그릇 1개와 찻잔, 숟가락, 방석 등 개인 물품을 가져오게 하고 그릇에 밥과 찬을 덜어서 남기지 않고 먹는 약식 발우공양을 안내한다. 식사를 마치면 밥을 담았던 그릇에 물을 따라 헹궈 마시도록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대중들과 밥을 먹던 방식과 비슷하며 오늘날 그 정신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정관스님의 생각이다.

“부처님이 2천600년 전에 이미 발우 공양과 쓰레기 없애기를 실천하신 겁니다.”

정관스님은 “(사찰 음식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자연환경을 보호해야 하고 뭇 생명을 존중하고 살려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려면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세계인들과 같이 함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양사 천진암 사찰음식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0일 오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스님이 준비한 사찰 음식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그는 이날 배추와 각종 뿌리채소를 활용한 튀김, 가죽나무 순 장아찌, 샐러드, 토란국 외에 표고버섯 조청 조림 등을 내놓았다.

표고버섯 조청 조림은 사연이 있는 정관스님의 대표 메뉴다.

그가 출가한 지 7년 정도 지났을 때 아버지가 찾아와 ‘고기도 없고 생선도 없는 절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한 일이 있었다.

이에 정관스님이 ‘절에도 맛있는 음식이 있다’며 대구 동화사 계곡에서 직접 만들어 대접한 음식이 바로 표고버섯 조청 조림이다.

아버지는 음식을 준비하는 딸과 1∼2시간 대화를 하며 응어리를 풀었다. 맛있게 먹은 후 딸에게 삼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정관스님은 국내 외에서 열리는 사찰 음식 소개 행사 등으로 올해 하루도 쉬지 못했다. 백양사에서 정관스님과의 함께 하는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 개시 후 금세 마감된다.

백양사 새벽 타종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스님이 범종을 치고 있다.

스스로를 셰프로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정관스님은 “요리는 수행”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쉼 없는 일상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일이며, 더없이 귀중한 일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이날 백양사의 하루는 오후 9시에 종료했다.

다음날 일과는 동이 트기 훨씬 전에 시작했다. 차가운 산 공기와 도시보다 몇 배는 많은 별이 새벽 4시 20분쯤 방을 나서는 템플스테이 참가자의 졸음을 쫓았다.

범종 소리가 계곡물 소리를 비집고 어둠 속에서 웅장하고 길게 이어졌다. 대웅전 안에서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부처님 앞에 모인 가운데 목탁음과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새벽 예불은 반야심경 독송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새벽 예불하는 스님들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대웅전에서 스님들이 새벽 예불에 임하고 있다.

백양사 포교국장인 지인스님은 꼭두새벽 기상으로 긴장한 몸과 마음을 선 명상과 크리스털 싱잉볼(명상용 주발) 명상으로 녹여줬다.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백양사 주지인 무공스님은 차를 내주며 세상살이의 지혜를 들려줬다.

KTX에서 큰소리로 통화하는 승객처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이 일으키는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고 묻자 무공스님은 중생이 면할 수 없는 8가지 고통, 즉 팔고(八苦) 중 하나인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거나 살아야 하는 괴로움)를 거론했다.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에서 주지인 무공스님이 차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원증회고가 가장 고통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속으로는 싫어 죽겠는데, (그 사람이) 자꾸 와서 나를 괴롭게 합니다. 남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 아니고 내가 고통스러워요. 진정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 고통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백양사 대웅전의 풍경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 대웅전에 풍경이 매달려 있다.

이념 대립에 관해서는 “옳다 그르다 혹은 좌(左)다 우(右)다 하는 것은 너의 방향이 그 방향일 뿐인 것”이라며 “네가 거기서 바라보면 좌측이지만 상대 쪽에서 바라보면 우측”이라고 지적했다.

공감하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는 않겠지만 반세기 가까이 산중생활을 한 스님의 말씀이 겨울이 오늘 길목에서 여운을 남겼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하기 때문에 시비가 발생합니다. 그런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면 시비가 없을 것이에요. 다시 바라보면 틀린 게 없습니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이죠.”

백양사 마스코트 ‘백양이’

(장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1일 오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에서 주지 무공스님이 백양사 상징물로 제작한 인형 ‘백양이’를 보여주고 있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