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황여환 연기…”쟁취가 아닌 따뜻한 사랑하는 인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듯이 마음의 병에 걸리면 가는 곳이 정신과죠. 마음이 아픈 분들이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기를 더 낼 수 있으면, 정신과를 향하는 문턱이 낮아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제목처럼 한 대형 병원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다양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정신과 전문의 황여환을 연기한 배우 장률은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사실 이 작품의 대본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며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 에피소드를 읽고 집에서 혼자 예닐곱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장률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의사로서 들어주고 받아내는 전문가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며 “자문해주신 의사 선생님께 전화드려서 털어놨더니 ‘눈물이 나면 울어도 된다’고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작품을 준비하려 정신과 의사들을 만나 자문받으면서 마음에 병을 앓는 분들이 좀 더 쉽게 치료받고 주변에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장률이 언급한 PTSD 환자는 드라마 7회에 등장한다. 최준기라는 이름의 이 환자는 갓 태어난 자녀가 영아 돌연사로 세상을 떠나고, 이에 힘들어하던 아내마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자 PTSD에 시달린 끝에 자해에 이른다.
여환은 준기의 누나에게서 사연을 듣고 “망상 증세는 환자 아내의 죽음에 대한 고통이 원인일 수 있다”고 침착하게 진단을 내린다. 이 장면에서 장률은 입술과 눈빛을 파르르 떨어 여환의 감정 동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장률은 “정서에 너무 깊이 빠져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며 “늘 작품이 끝나고 나면 아쉽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지만, 그것도 (촬영 당시) 서른세 살 장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평가했다.
장률은 또 “시청자들에게 의사로서 신뢰감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제작진의 도움으로 실제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병원에서의 생활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학생 때 과외 선생님에게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가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 과외 선생님이 이 드라마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여환은 이지적인 정신과 의사인 동시에 정신병동의 간호사 민들레(이이담 분)를 일편단심으로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들레는 자신의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호감이 있으면서도 여환을 밀어낸다.
들레가 “뜨거운 물 안 나오는 집에 살아보셨느냐”고 묻자, 여환은 무심코 “요즘 그런 집이 어디있냐”고 반문한다. 얼마 뒤 들레는 허름한 자신의 집에 여환을 데려가 “뜨거운 물 안 나오는 집, 여기 있다”고 말한다.
여환은 그런 들레의 앞에서 자기 머리에 얼음물을 끼얹으며 “뜨거운 물 안 나오는 집에 안 살아봐서 이렇게라도 느껴보려 한다”, “이렇게밖에 내 마음을 표현 못하겠다”고 말한다. 여환의 진심이 들레에게 전해지는 장면이다.
장률은 “조금이라도 들레에게 공감하려 노력하는 여환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어서 촬영 때 얼음을 최대한 많이 넣어달라고 하고, 그것도 부족해 보여서 제가 직접 얼음을 더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여환처럼 직진하지는 못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여환은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성을 보이지만, 그 노력의 기저에는 이타심이 자리한다. 그는 “여환은 사랑을 쟁취하려는 인물이 아니고 상대의 꿈과 미래를 응원하고 조력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을 하는 인물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2013년 데뷔한 장률은 장르물을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폭력조직원 도강재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작년엔 티빙 드라마 ‘몸값’에서 아버지를 구하려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사려고 하는 고극렬을 연기해 호평받았다.
멜로물이 처음인 장률은 키스 장면을 촬영한 것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처음 해보는 연기라서 스태프한테 ‘처음이니까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며 “그러지 않으면 더 긴장되고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공개 예정인 티빙 오리지널 멜로드라마 ‘춘화연애담’의 주연을 맡았다.
앞으로 어떤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지 묻자, 장률은 “다 도전해보고 싶다”며 “저 배우가 이 장르도 되고 저 장르도 되고 다 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역할을 줘야 할까’ 하는 느낌을 드릴 수 있는 배우, 계속 궁금하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덧붙여 언젠가는 작품 제목을 들으면 장률이 떠오르는 그런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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