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한해인 “큰 에너지에 본능적으로 끌려”

임신으로 ‘경단녀’ 공포에 빠지는 작가 연기…”저도 불안감 있죠”

배우 한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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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지난 15일 개봉한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인 신인 작가 재이(한해인 분)는 학원 강사인 남자친구 건우(이한주)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기로 하고 동거하지만, 어느 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이에게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작가의 경력을 제대로 쌓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다. 이와는 달리 건우는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두 사람은 갈등을 빚으면서 파국을 향해 간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한해인은 이 영화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지독하게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가진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큰 에너지가 다가와 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본능적인 끌림 같은 걸 느꼈다”며 “그 에너지의 흐름을 한번 타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한해인은 “저 또한 여성으로서 결혼과 임신, 출산에 대한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내재해 있었던 것 같다”며 “재이가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모습도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이의 공포는 임신 자체보다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온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아이를 낳는 여성이 경단녀가 되고 마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공포를 못 이긴 재이는 임신 중인데도 술을 입에 대기도 한다. 관객에겐 이런 모습이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해인은 “처음엔 관객에게 밉상으로 보이면 어떡할까 고민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사회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재이를 진심으로 온전히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재이는 결국 출산하게 되지만, 자기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상황과 삶의 흐름에 떠밀린 면이 크다”며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양육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너무 컸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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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유 감독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유 감독은 결혼과 창작을 양립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유 감독은 이 영화를 “상처투성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모습이 투영된 재이는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고 연약해 보이기도 한다.

한해인은 “재이는 세상을 직시하려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으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과 자신의 감정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듯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목소리에 사람의 내면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재이를 연기할 땐 얇은 목소리를 내고, 그 속에서 나오는 미세한 떨림으로 그의 예민함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해인은 지난 4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경쟁 부문 초청작인 ‘폭설’로 주목받았다. 윤수익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한해인은 한소희와 호흡을 맞췄다. ‘기기묘묘'(2022), ‘달이 지는 밤'(2022), ‘아워 미드나잇'(2021), ‘생각의 여름'(2021) 등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한해인은 연기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털어놨다.

“배우는 가면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연기란 어쩌면 가면을 벗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만들어온 제 모습,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려야 캐릭터를 더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뭔가 꾸미고 더하기보다는 벗어냄으로써 좀 더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하는 게 목표랍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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