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최애의 아이’ 등 극장·OTT→단행본으로 인기 전이
어릴적 추억·신선한 재미 찾아 나선 국내 ‘덕후’들 속속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오명언 기자 =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빗장을 풀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결정한 뒤 25년이 지났다.
그해 일본어판 출판 만화와 만화 잡지가 국내에 들어왔고, 2000년 6월부터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수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콘텐츠가 쏟아지면 국내 문화산업이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등은 10대 위주의 서브컬처(하위문화) 유행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10대는 물론 3050의 소비력까지 등에 업고, 주류 유행으로 올라서는 모양새다.
◇ 영화관→OTT→서점가 차례로 장악한 日애니·만화…줄줄이 기록 경신
올 한 해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국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1월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하 슬램덩크)가 열풍의 서막을 올렸다.
‘슬램덩크’는 개봉 2주일 만인 1월 17일 100만 관객의 고지에 올랐고, 3월 5일에는 누적 관객 수 381만명을 기록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슬램덩크’의 누적 관객 수는 23일 현재 477만2천여명이다.
인기 바통은 3월 8일 극장에 걸린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넘겨받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단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했고, 4월 14일에는 ‘슬램덩크’를 제치고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557만3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안방극장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애니메이션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OTT(동영상 스트리밍), 주문형 비디오(VOD), TV채널로 즐겨 시청한 애니메이션 1위로 ‘짱구는 못 말려’가 꼽혔고, ‘귀멸의 칼날’, ‘슬램덩크’,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넷플릭스 시청 순위 기록을 보면 ‘주술회전’ 시즌2는 총 7주(7월 16일∼8월 6일, 10월 1일∼15일) 동안, ‘진격의 거인: 더 파이널 시즌’ 파트3은 4주(9월 17∼24일, 11월 12∼19일) 동안 국내 톱 10에 머물렀다.
또 다른 OTT인 왓챠에서는 올해 1월에서 10월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 점유율이 작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왓챠 관계자는 “올해 새로운 시즌을 공개한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그리고 신작인 ‘최애의 아이’, ‘터무니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 밥’ 등이 특히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며 “이들 작품은 공개 분기 동안 국내 시청순위 5위권 내에서 자리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원작 출판만화의 판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슬램덩크’ 만화책은 애니메이션 개봉 후 250만 부 이상 팔렸고, ‘최애의 아이 12’는 예스24가 집계한 지난달 4주차 베스트셀러 종합 부문 13위에 오르기도 했다.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결과 만화 이용자들이 즐겨보는 출판만화 상위 10개 작품 가운데 한국 만화는 ‘이태원 클라쓰'(5위)와 ‘열혈강호'(7위) 단 2개뿐이었다.
‘원피스’가 1위를 차지했고 ‘슬램덩크’, ‘명탐정 코난’, ‘귀멸의 칼날’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X세대·밀레니얼 세대 향수 자극·Z세대엔 신선한 매력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인기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이 올해 극장에서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작품 순위를 조사한 결과 2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 2위 작품으로 꼽았다.
연령별 OTT·VOD 애니메이션 순위를 보면 10대와 20대가 ‘짱구를 못말려’를, 30대와 50대는 ‘귀멸의 칼날’, 40대는 ‘슬램덩크’를 1위 작품으로 응답했다.
30∼50대의 경우 학창 시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기꺼이 콘텐츠 소비에 나서고 있다.
‘슬램덩크’ 팬을 자처하는 회사원 김모(31)씨는 “30대가 되면서 이제는 뚜렷한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가 진짜 농구천재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고 응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Z세대(1997∼2006년생)에게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생 오모(23)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는데 2D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가 있다”며 “한국 드라마보다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초년생 박선영(24)씨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이버펑크’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입덕’했다”며 “이후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뒤 내용이 궁금해서 만화책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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