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쓴 음악과 인생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어머니는 때론 잔인하고 변덕스러웠다. 자녀에겐 엄격했다. 강인해 보였지만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도 가끔 내비쳤다. 그런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명절 휴가를 낭비”하며 집으로 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아들이 되어서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예술 평론가로 성장한 아들 필립 케니콧은 바흐의 ‘샤콘’ CD를 챙겨 본가로 향한다.
‘피아노로 돌아가다’는 케니콧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바흐를 다시 배우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담은 에세이다. 바흐의 음악을 배우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해 나간다는 상투적 내용을 기대한다면 책을 펼칠 필요도 없다. 케니콧은 그런 가짜 위로를 심어주지 않는다.
책은 보다 진지하다. 바흐와 그의 곡을 연주한 위대한 연주자 글렌 굴드와 저자의 시시콜콜한 가족 얘기, 인생 얘기를 엮었다. 원제는 ‘대위법'(Counterpoint)이다.
대위법이란 두 개 이상의 선율을 선형적인 개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결합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고 바흐는 이 대위법의 최고 고수였다.
에세이는 바흐의 이야기가 하나의 선율을 이루고, 어머니를 비롯한 저자의 이야기가 또 다른 선율을 이룬다. 이 두 성부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채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종국에는 화해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 에세이는 대위법적으로 쓰였다.
두 서사인 바흐와 저자의 이야기가 맞닿는 곳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저자는 바흐가 작곡한 이 곡을 어머니 사후 5년 동안 배우며 진지한 음악가로 성장하고, 더 깊은 삶 속으로 나아간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시작해 ‘아리아’로 끝난다. 그 사이에 아리아를 변주한 30개의 곡이 이어진다. 신기한 점은 첫 아리아는 마지막 아리아와 완전히 같지만 그러면서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악보에 표시된 음표는 같지만, 변주 부분을 거치며 청자의 마음 상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한 번 흘러간 음, 한 번 흘러간 인생, “그것은 절대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강물과 마찬가지”다. 40~50분에 불과한 연주지만, 그 안에는 삶의 복잡미묘한 것들이 모두 담겨있다. 불안, 불화, 조화, 격동, 규칙성, 진지함, 그리고 희로애락.
클래식 음악 팬이라면 첫 페이지부터 책에 빨려들 가능성이 높다. 샤콘에 대한 매력적인 해설, 골드베르크에 대한 진지한 공부, 괴팍하고 성마르면서 애잔함이 느껴지는 바흐라는 인물, 그리고 바흐에 관해선, 누구도 보지 못한 곳을 본 굴드.
바흐의 음악, 그중에서도 골드베르크를 깊이 관찰하고, 그 곡의 정수를 글로 녹여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음악 비평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건 예술이 주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짧은 ‘순간’을 잠시나마 보여준다는 점이다. 책은 그 순간의 심오함을 전한다.
정영목 옮김.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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