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광범위한 활동 영역으로만 보면 천재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이자 교향곡, 관현악, 실내악, 협주곡, 발레, 가곡, 합창, 영화 삽입곡에 이르는 음악을 써낸 작곡가였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작곡을 맡아 대히트를 끌어내기도 했다.
일만 하기도 벅차 보이는데, 연애사도 복잡하다. 아이 셋을 가진 유부남이지만 동시에 양성애자이기도 했던 그의 옆에는 항상 남자 애인들이 있었다. 이런 남편과 살았던 여자의 삶은 어땠을까.
브래들리 쿠퍼가 연출하고 주연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번스타인의 음악 여정보다 그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전기 영화다.
쿠퍼는 보편적이지는 않아도 진실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매료돼 대학원 시절부터 영화화를 꿈꿨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초기 대본을 건네며 번스타인 역을 제안했다. 쿠퍼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캐스팅을 수락했다. 스케줄 문제로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이 불발되자 쿠퍼는 직접 감독까지 맡았다.
영화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이던 번스타인이 우연한 기회로 꿈의 무대에 오르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리허설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훌륭한 연주를 끌어내고, 언론은 드디어 미국 출신의 천재 지휘자가 탄생했다며 찬사를 쏟아낸다. 그즈음 평생의 연인 펠리시아(캐리 멀리건 분)도 만난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가다 결혼해 딸도 얻는다.
여기까지가 1부다. 2부에선 중년이 된 번스타인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흑백이었던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번스타인은 젊은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스타가 돼 있다. 그러나 배우였던 펠리시아는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무대에서 멀어진 상태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남편의 끝없는 남성 편력이다. 애인을 가족 모임에 데려오는 것은 물론 파티에서 처음 본 남자와 입을 맞추다 들키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동은 펠리시아가 폐암 진단을 받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펠리시아는 “그렇게 살다가 외로운 게이 영감으로 죽을 것”이라며 악담하곤 하지만, 남편을 향한 사랑은 스크린 바깥까지 전해진다. 아이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라면서 혼자 속앓이하는 모습도 안쓰럽기 그지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번스타인보다 펠리시아가 더 뇌리에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두 예술가의 사랑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남성의 육체를 갈망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성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번스타인과 이런 그를 평생 받아주는 펠리시아의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와닿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부의 감정선과 스토리가 세밀하지 못한 탓에 설득력은 더 떨어진다. 실화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이 왜 이토록 서로를 버리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두 배우의 연기만큼은 빛난다. 쿠퍼는 번스타인 특유의 화려한 지휘 자세를 재현해낸다. 그는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휘봉을 받은 뒤부터 대학생 때까지 눈앞에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상상하며 지휘 연습을 하곤 했다고 한다.
번스타인이 남긴 명곡을 듣는 것도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대표곡 ‘미사’를 비롯한 다양한 곡이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로 삽입됐고, 라이브 연주도 나온다.
12월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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