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7권 방대한 분량…치열했던 내면과 격동의 역사 기록
쇼팽·나폴레옹 등에 대한 인물평도 흥미로워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조르주 상드(1804~1876)는 흔히 음악가 쇼팽의 연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문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던 상드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훌륭한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작가 조르주 상드는 격동의 19세기 프랑스라는 시대가 부과한 각종 제약에 적극적으로 맞섰던 투사이자 작가, 예술가였다.
최근 완역돼 나온 자서전 ‘내 생애 이야기’에서 상드는 원고지 8천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을 통해 자신의 내밀한 삶의 비밀과 일생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왕족 혈통의 아버지와 하층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상드는 자신의 엄마를 경멸하는 친가 쪽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할머니 집에서 외롭게 성장한다. 이때의 경험은 상드에게 귀족계층에 대한 증오와 민중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준다. 귀족들의 허풍과 위선은 어린 상드에게는 민중의 정겨움과 친절에 반대되는 “가짜 기품”이었다.
“이런 가짜 기품이야말로 겉보기에 아름답고 매력적일지 몰라도 신체적 미숙함과 우둔함의 증표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멋진 신사분들은 카펫 위에서는 너무나 잘 걸으며 인사를 나누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땅 위에서는 세 발자국만 걸어도 곧 피곤해하며 걷지 못한다.” (내 생애 이야기 4, 60쪽)
상드는 수녀가 되기를 꿈꾸던 수녀원 시절, 엄청난 독서로 그 어떤 남자보다도 깊이 있는 지성을 갖추게 됐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을 만난 뒤 갈등하다 스스로 독립하게 되는 이야기, 혼란의 프랑스 혁명의 뒤안길에서 사회주의의 투사로 살던 시절 등 당대의 역사를 개인적 경험과 엮어 생생히 그려 보인다.
프랑스 혁명 과정을 작가로서, 또 공화주의의 신봉자로서 가까이서 지켜본 기록은 극한 대립이 일상화된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현대인들도 수긍할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절대왕정 타도와 공화주의 건설이라는 숭고한 이상을 향해 나가던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광기 어린 공포정치와 폭력이 이어진 것에 대해 상드는 “모든 사람이 자기편을 순교자라 여기며 그에 합당한 명예와 대우를 달라고 아우성치던 그 끔찍한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조금만 노선이 달라도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극한의 대립과 갈등을 보며 상드는 또 이렇게 기록한다.
“모두가 복수를 위해 돌아가며 사형집행인이거나 사형수가 되고 억압자가 되건 억압을 받는 자가 되건 누구도 생각할 시간도 선택의 자유도 없을 때, 어떻게 열정 하나만으로 그 행동을 막을 수 있으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내 생애 이야기 1, 109쪽)
당대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나폴레옹에 대해선 “신념 없이 오직 잇속을 위해 전쟁을 벌인 영웅”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프랑스를 미래로 나아가게 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려버렸다고 지적한다.
특히 쇼팽과 8년이나 연인으로 지내며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로 널리 알려진 상드이기에, 자서전에는 쇼팽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상드의 표현에 따르면 쇼팽은 모든 아름다움과 고상함과 미소에 감동하지만 잘못된 말 한마디나 애매한 미소 등에는 지나치게 상처받았던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다.
상드와 함께하던 시절 쇼팽이라는 천재의 신경증은 도를 넘어 발작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는데, 상드는 어느 날 이렇게 적는다.
“나는 그의 방 옆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그가 자면서, 아니면 잠이 깨서도 보는 그 악령들을 쫓기 위해 글을 쓰다 백 번도 더 일어나야 했다.”
결국 상드는 쇼팽과 결별을 하게 되지만,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둘은 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쇼팽은 상드와 헤어진 후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상드의 자서전 ‘내 생애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여성작가 자서전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책이다.
프랑스에서 작가의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전집 수록 여부인데, 이 전집에는 상드의 150편이 넘는 소설이나 희곡은 제쳐두고 그녀의 자서전 전편과 여행기 등 자전적 글들만 수록됐다고 한다.
전집을 완역한 불문학자 박혜숙 씨는 “이 전집에 오른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크니 그녀의 대표적 작품은 어떤 소설들보다 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량이 방대하지만 상드의 솔직하고도 치열한 목소리를 유려하고도 정확한 한국어로 옮긴 번역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나남. 전 7권. 각 권 312~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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