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제작비와 줄어든 광고수입에 방송사들 경영난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2023년 방송계는 상반기 ‘더 글로리’와 하반기 ‘무빙’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흥행해 다시 한 번 ‘K-드라마’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플랫폼이 다변화하고 여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처럼 한두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기보다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됐다.
방송사들은 늘어난 제작비와 줄어든 광고 수익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TV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서 공영방송이 위기를 맞았다.
◇ 상반기 ‘더 글로리’ 하반기 ‘무빙’…OTT 콘텐츠 열풍
올해 ‘K-드라마’ 가운데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둔 것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와 디즈니+ 오리지널 ‘무빙’이었다.
송혜교가 주연한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와 명대사가 등장해 흥행 가도를 달렸다.
작년 12월 30일 선보인 ‘더 글로리’ 파트1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시리즈물 가운데 가장 많은 주간 시청 시간을 기록했으며, 올해 3월 10일 공개된 파트2는 영어권·비영어권을 통틀어 주간 시청 시간이 가장 긴 것으로 집계됐다.
‘더 글로리’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최우수 연기상(송혜교), 조연상(임지연)을 받은 것을 비롯해 각종 수상식을 휩쓸어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이 작품으로 인해 학교폭력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여러 유명인이 학교폭력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드라마를 연출한 안길호 PD도 필리핀 유학 당시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나오자 사실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반기엔 한국형 히어로 드라마 ‘무빙’이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데다 배우 류승룡과 조인성, 한효주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됐다.
드라마 공개 후 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국내에선 월간 디즈니+ 활성이용자 수가 ‘무빙’ 공개 직후 46% 급증했다.
‘무빙’은 초능력자들의 싸움 등 현란한 볼거리를 제공해 눈길을 끌었고, 흥미로운 서사를 가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감동을 전했다. 미국 비평 사이트 IMDB에서 한때 평점 8.6을 기록하며 호평받았다.
방송사들이 제작한 드라마들 가운데선 2∼4월 방송된 SBS의 ‘모범택시’ 시즌2가 최고 21.0%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JTBC의 ‘닥터 차정숙’이 18.5%로 뒤를 이었고 tvN ‘일타스캔들’이 17.0%, SBS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이 16.8% 등으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흥행작이 현대극인 가운데 하반기 남궁민과 안은진 주연의 MBC 퓨전사극 드라마 ‘연인’이 최고 12.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KBS는 정통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을 11월 첫 방송했다.
◇ ‘대박’ 어려워진 예능…부활한 ‘개그콘서트’의 고전
예능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과거 ‘토요일엔 무한도전’ 또는 ‘일요일엔 개그콘서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두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뤘던 것과 달리 플랫폼 환경에 맞게 점차 다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 여행, 요리, 음악 경연, 연애, 서바이벌 등 몇 년째 고정적인 소재로 자리 잡은 예능 프로그램이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는 한편 예능에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넣은 넷플릭스의 실험적 프로그램 ‘좀비버스’도 8월 선보였다.
다만 쏟아지는 예능 가운데 ‘대박’ 콘텐츠가 좀처럼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 MC’ 유재석은 9월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OTT가 생기고 일자리가 더 늘어나 좋은 것 아닌가 했는데, 콘텐츠가 많으니까 화제가 되기도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명 방송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일은 올해도 지속됐다. 신동엽은 올해 8월 유튜브 채널 ‘짠한형’을 시작했고, 이경규 역시 7월 유튜브에 ‘르크크 이경규’ 채널을 열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2020년 6월을 끝으로 방송이 중단됐던 KBS의 ‘개그콘서트’가 3년 4개월여 만인 올해 11월 부활했다.
‘개그콘서트’의 첫 방송은 4.7%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과거의 코너들과 기시감이 느껴진다거나 외모를 비하하는 요소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2회부터는 3%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 대중 곁을 떠난 스타들…’토크쇼의 제왕’ 서세원
올 한해 여러 스타가 대중의 곁을 떠났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 출신 사업가 서세원 씨는 올해 4월 67세를 일기로 캄보디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서씨는 한때 한국 예능계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특히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서세원쇼’ 등 토크쇼 진행자로 인기를 누리며 한국에 토크쇼가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서씨는 큰 인기를 누리던 중 비리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확정받고 가정 폭력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잼 아저씨’와 ‘브라운 박사’를 연기한 성우 황원 씨,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배우 이경표 씨, 축구 전문 캐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서기원 씨, 방송연기자노동조합 초대 위원장인 박경득 씨 등도 올해 유명을 달리했다.
◇ 경영난·TV 수신료 분리 징수…어려워진 방송사들
방송사들은 올해 늘어난 제작비와 감소한 광고 수익, OTT 플랫폼과의 경쟁 등으로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tvN을 운영하는 CJ ENM은 올해 1·2분기 모두 적자를 기록했고, 3분기에 흑자를 기록했으나 전년 동기에 비해 71% 줄어든 영업이익을 남겼다.
JTBC는 상반기 여러 드라마를 흥행시켰음에도 10월 “올해 예상 적자가 520억원”이라며 2주간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중앙일보·JTBC 노동조합 추산에 따르면 이 기간에 80여명이 희망퇴직에 응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글로벌 OTT가 콘텐츠 제작에 큰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제작비는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됐는데, 방송사들의 광고 수입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7월 TV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 징수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수신료에 의존하던 KBS와 EBS는 재정 위기에 봉착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와 EBS 지부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KBS는 김의철 사장이 9월 해임되고 박민 사장이 11월 취임하는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발생했다. 김 사장은 KBS 이사회의 해임 제청 절차가 부당하다며 취소 소송을 내고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가처분은 기각됐다.
박 사장은 이사회의 임명 제청 의결 과정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으나 여권 성향 이사들 주도로 임명 제청이 이뤄졌다.
박 사장은 취임 후 지난 수년 동안 불공정한 편파 보도가 이뤄졌다며 국민 앞에 사과했고,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노조 KBS 본부는 박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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