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열리는 지상파 공연, 역량 제자리…”적자 면하는 게 목표”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오명언 기자 =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말 가요 행사가 미숙한 무대 연출과 위조 티켓, 해외에서의 진행 등으로 잇달아 논란이 되고 있다.
K팝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팬들의 눈높이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무대 연출 역량은 발전 동력 없이 제자리걸음을 해온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 안전사고·위조티켓 SBS…일본 진행 논란 KBS
26일 방송가에 따르면 전날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진행된 ‘SBS 2023 가요대전’은 크고 작은 여러 사고가 발생했다.
첫 사고는 그룹 에스파가 레드카펫 포토월에서 퇴장하려던 중 발생했다. 한 남성이 안전선을 넘어 에스파의 뒤로 뛰어들었고, 경호원이 남성을 제지했다.
그룹 NCT는 ‘배기 진스’ 공연을 위해 무대에서 이동하던 중 멤버 텐이 무대 리프트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이 목격돼 팬들의 걱정을 샀다. 이후 텐은 팬과 소통하는 플랫폼에 “저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이 밖에도 자잘한 사고가 계속됐다. 있지(ITZY)의 공연 중에는 전광판에 엉뚱하게도 컴퓨터(PC) 운영체제 우클릭 때 나타나는 메뉴가 표시됐고, 제로베이스원 공연에선 특정 부분의 음악만 반복 재생됐으며, 스트레이 키즈 공연에선 뉴진스의 음악이 재생됐다.
위조된 티켓이 유통돼 일부 팬이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SBS는 이와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KBS의 ‘2023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은 개최 전부터 논란이 됐다. KBS가 매해 열어온 ‘가요대축제’를 일본에서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가요대축제를 외국에서 여는 것은 한국의 공영방송사로서 TV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는 KBS의 본분을 잊은 행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일자 KBS는 ‘가요대축제’가 아닌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로 행사를 확대해 국내외 공연을 병행하기로 했다.
공연은 이달 9일 일본과 15일 국내에서 각각 열렸고, 방송은 15일 일괄적으로 전파를 탔다. KBS는 15일 먼저 국내 공연을 생중계한 뒤 9일 열렸던 일본 공연 녹화본을 내보냈다.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은 국내 팬들을 차별한다는 논란도 일었다.
일본 웹사이트에 ‘한국에서 방영되지 않은 미공개 영상을 내년 1월 26일부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독점 공개한다’고 밝힌 것과 달리 KBS 국내 사이트에는 ‘저작권 문제로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공지한 것이다. 비난이 일자 KBS는 종전의 공지 글을 없애고 “12월 18일부터 다시 보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재공지했다.
◇ K-팝 세계로 뻗어가는데…발전 동력 없는 방송사
지상파 방송사들이 연말을 결산하는 가요 행사를 여는 것은 오랜 관례이자 전통이다. 각 방송사는 1960∼1990년대부터 서로 다른 이름으로 연말에 가요 행사를 열어 한 해 동안 활약한 가수들의 무대를 꾸몄다.
문제는 K-팝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을 만큼 위상이 높아지는 데다 점차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운 무대가 많아지면서 카메라, 음향, 연출 난도는 올라가는 데 비해 방송사들의 공연 역량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KBS는 2013년과 비교해 작년엔 총수익과 지출이 모두 감소했다. 음악방송을 위한 역량을 진일보시키는 데 예산을 쏟아부을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사정은 SBS나 MBC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역할 때문에 3사는 모두 무료 방청객을 모집할 뿐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연말 가요 행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연말 가요 행사 시청률이 2000년대 최고 10%를 넘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1∼4%대에 불과해 높은 광고 수익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연말 가요 행사가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며 “다만 적자를 면하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KBS가 올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연말 가요 행사를 연 것도 이 같은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내 공연은 예년처럼 방청객들을 무료로 초청했지만, 일본 공연은 일반석 2만2천엔(약 20만원) VIP석 4만엔(약 36만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관계자는 “사기업에서 여는 수많은 공연이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지상파는 예산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정된 예산으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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