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 우려 딛고 K팝 한류 활활…양국 문화 교류도 활발
최근 요아소비 등 日 가수, 국내서 인기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최재서 기자 = # 이달 17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 장내를 가득 채운 관객들이 인기 일본 밴드 요아소비(YOASOBI)의 히트곡 ‘아이돌’을 떼창으로 따라 불렀다. 요아소비는 “해외 첫 솔로 콘서트를 한국에서 시작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 28일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에서 열린 K팝 간판 걸그룹 트와이스의 콘서트. 내년 7월 7만명대 규모를 자랑하는 닛산 스타디움에서의 공연 계획이 ‘깜짝’ 공개되자 장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달 1일로 일본 대중음악의 빗장이 완전히 풀린 지 20년을 맞는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 가요계에선 ‘체급’이 우위에 있던 일본 대중문화 시장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K팝은 이를 보란 듯이 불식시키고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차세대 인기 가수가 국내에서 공연하고 인기곡을 배출하는 등 J팝이 인기를 끌면서 K팝과 J팝이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 2004년 음악 시장 ‘활짝’…J팝 국내 인기는 미지근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1월 1일부로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하나로 일본어로 된 CD 국내 발매를 허용했다.
앞서 1999년 2차 개방으로 2천석 이하 규모의 실내 일본 대중음악 공연을 허용한 뒤 2000년 모든 일본 대중음악 공연을 개방한 데 이은 후속 조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는 일본 가수들이 제한 없이 국내에서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길이 열렸다. 이에 이전까지 음지에서 소비되던 엑스재팬, 우타다 히카루, 드림스 컴 트루 등 유명 일본 뮤지션의 CD가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됐다.
이를 두고 당시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 음악계의 국내 영향 확대를 걱정하는 시각도 일부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2004년은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송되고 보아가 큰 성공을 거두는 등 한류의 ‘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한 때였기에 1998∼1999년 일본 대중문화 1·2차 개방 때만큼 우려가 크지는 않았다.
한 가요계 전문가는 당시 “일본어 가창 음반이 들어온다고 곧바로 가요 시장이 잠식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보다 몇 배 이상 규모가 큰 일본 음반 산업자본이 들어오면 침체한 국내 음반 시장이 빈 사상태를 맞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 대중음악 개방의 여파는 크지 않았다.
개방 이후 나카시마 미카가 국내에서 수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휴대전화 컬러링 음악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삽입된 리메이크곡 ‘눈의 꽃'(원곡 雪の華)이 인기를 끈 데 따른 영향이 컸다.
또 2006년에는 일본 인기 그룹 아라시(嵐)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연 내한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일본 아이돌 그룹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 일본서 K팝 인기 폭발…국내서도 차세대 ‘J팝 스타’ 주목
이와 반대로 K팝은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훨훨’ 날았다.
지난 2002년 보아가 일본 정규 1집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첫 1위를 차지했을 때만 해도 관련 소식이 지상파 메인 뉴스에 오르며 대서특필 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방탄소년단(BTS) 정국,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NCT 등 숱한 후배 가수들이 오리콘 정상에 올라 이는 ‘예삿일’이 됐다.
일본 내 K팝 한류는 현지화에 성공한 보아·동방신기가 불을 지핀 이래 소녀시대·카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세븐틴 등으로 이어져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지난 2021∼2022년 모든 현지 가수를 제치고 해외 가수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2년 연속 연간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들만 출연할 수 있다는 연말 특집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는 그룹 세븐틴·스트레이 키즈, 걸그룹 르세라핌과 트와이스의 유닛(소그룹) 미사모 등이 무대를 꾸민다.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도 운이 좋게 20년을 달려왔으니 후배들은 40년도 가능할 정도로 K-콘텐츠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라며 “후배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니 포기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K팝 한류 만큼 열기가 뜨겁지는 않지만 일본 가수들도 최근 국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마니아층을 거느린 엑스재팬, 라르크 앙 시엘, 아무로 나미에 등 유명 J팝 가수보다는 후배로, 2000년대 이후 데뷔한 요아소비, 이마세, 레드윔프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요아소비는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OST ‘아이돌’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엠카운트다운’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아이브, 르세라핌, 에스파 등 유명 K팝 스타들이 ‘아이돌 챌린지’ 영상을 올린 점도 인기를 거들었다. 이달 열린 이들의 내한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이 밖에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는 국내 톱스타도 뚫기 힘들다는 멜론 ‘톱 100’ 차트 상위권에 진입해 ‘MMA 2023’서 수상했고, 밴드 레드윔프스도 내한 공연 티켓 전석을 팔아치웠다.
◇ K팝, 일본서 ‘진출’ 넘어 ‘현지화 그룹’으로 새 도약
가요계에서는 한류 태동기에 이뤄진 일본 음악 개방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며 체질 강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2004년은 J팝이 동아시아에서 이전만큼의 인기를 잃고 퇴조하던 때였고, 동시에 우리 음악과 드라마가 조명받기 시작하던 시기”라며 “일본 음악이 양성화되니 오히려 일본 음악을 암암리에 따라 하던 부분도 사라졌다. 음악 개방을 통해 한국 음악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짚었다.
K팝은 이제 ‘일본 진출’을 넘어 일본인 위주로 구성된 현지화 그룹을 통해 또 다른 도약 중이다.
JYP의 니쥬와 하이브의 앤팀(&TEAM)이 이미 데뷔해 성과를 냈고, SM도 내년 일본 거점의 ‘NCT 뉴 팀'(가칭)을 정식 데뷔시킨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틱톡이나 유튜브 등 글로벌 SNS를 활용한 K팝 특유의 콘텐츠 마케팅 전략이 일본에서의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일본 문화와 정서를 고려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며 “현지에 기획사를 설립해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그룹을 결성하고,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접목해 완성도 있는 음악과 비주얼을 선보이고, 현지 언어로 팬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결집력을 높이는 것이다. 일본 음악 시장이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다 보니 주요 기획사들이 현지화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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