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8년 만에 연기상…진심 다한 드라마로 기억될 것”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양규 장군의 활약을 알리고 싶어서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댓글로 ‘양규 장군이 지승현을 살렸다’고 적어주신 걸 보고 소름이 돋았죠. 제가 진심으로 임하면 보답이 따라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지승현은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고려거란전쟁’은 거란(요나라)이 고려를 침공한 총 세 차례의 여요전쟁 가운데 고려 8대 국왕인 현종 대에 벌어진 2·3차 전쟁을 다룬 드라마다. 총 32부 가운데 16부까지 방송됐다.
특히 지난 7일 방송된 16회는 거란군이 물러가면서 2차 전쟁이 마무리되고, 이 과정에서 양규가 퇴각하는 거란 황제를 없애려고 분전하다가 전사하는 모습이 다뤄졌다.
지승현은 이 장면에서 거란군의 칼에 갑옷이 뜯겨나가고 화살에 몸이 뚫리면서도 거란 황제를 겨냥해 화살을 쏘다가 선 채로 숨을 거두는 비장한 양규의 모습을 연기했다.
지승현은 “양규 장군을 연기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양규 장군의 활약을 알려 뿌듯하다”며 “사실 양규에 대해서 저도 잘 몰랐고 이번 드라마를 위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애민(愛民)과 희생정신 없이 이룰 수 없는 화려한 업적을 남긴 분인 걸 알았다”고 말했다.
여요전쟁에서 활약한 서희나 강감찬에 비해 양규는 대중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려거란전쟁’은 그런 양규의 활약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양규가 단 3천명의 군사로 40만 거란 대군을 7일 동안 막아낸 것, 이후 거란군이 고려 땅에서 거점으로 삼아 6천 군사를 주둔시킨 곽주성을 단 1천700명의 군사만 이끌고 탈환한 일도 드라마를 통해 자세히 그려졌다.
지승현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인물인데도 사료들이 구체적으로 남아있지 않다”며 “개인적으로는 양규 장군의 초상화가 있다면 보고 싶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 ‘양규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그의 활약에 관한 여러 기록을 찾아봤다고 한다. 국궁을 능숙하게 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고 손을 놓고도 말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매일같이 승마 연습에 매달렸다. 그는 인터뷰 도중 국궁을 다루는 방법을 손짓을 섞어 자세히 설명하면서 열정을 드러냈다.
이런 배우의 노력에 힘입어 ‘고려거란전쟁’은 최고 10%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양규 장군이 전사한 장면의 순간 시청률은 11%까지 치솟았다.
‘고려거란전쟁’은 기존의 대하사극에 비해 사실감과 규모감을 크게 키워 사실감을 높였다.
옛 사극에서 칼에 제대로 닿지 않고도 피를 뿜으며 숨지는 식으로 전투 장면을 연출했던 것과 달리 ‘고려거란전쟁’은 수없이 쏟아지는 칼날에 양규의 갑옷이 조금씩 뜯겨나가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묘사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승현은 “이 장면을 찍는 데 3일이 걸렸고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엄청나게 고생했다”며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에 촬영하면서 부상자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또 “고생도 하고 힘들었지만, 그 시기 실제 백병전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그런 장면을 보여드린 것은 지금까지 사극을 통틀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면을 찍는 3일 중에는 지승현의 생일(12월 19일)도 있었다. 드라마를 연출한 김한솔 PD는 이를 두고 “양규 장군이 죽고, 지승현이 태어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승현은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진심을 다하면 보답이 따라온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라며 “그런 진심을 다했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마지막까지 시청자들께 그런 작품으로 각인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승현은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탄탄한 연기 경력을 쌓아온 배우다. 그는 2009년 영화 ‘바람’에서 불량 고교생 역할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2016년엔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북한군 안정준 상위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활약에도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던 지승현은 작년 말 KBS 연기대상에서 마침내 인기상과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데뷔 18년 만에 처음 이런 상을 받는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지승현은 작년 말 ‘고려거란전쟁’ 외에도 MBC ‘연인’과 SBS ‘7인의 탈출’, 디즈니+ ‘최악의 악’ 등에도 출연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직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차기작은 반드시 현대극을 하겠다”고 말했다. 잇달아 사극 ‘연인’과 ‘고려거란전쟁’에 출연한 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를 묻자, 지승현은 “지켜야 할 마음가짐 열 가지를 적어서 책상에 붙여놓고 매일 아침 읽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즐거움으로 내 가치를 전달한다’는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일상에서 벗어난 재미와 감동, 때로는 공포의 재미를 느끼게 드리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끝까지 그런 역할에 충실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