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한다…통제는 무용지물”…출산·양육, 그 가시밭길

산부인과 의사가 쓴 새 책 ‘출산의 배신’

비어 있는 신생아실 요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선생님! 저는 이런 것일 줄 몰랐어요. 왜 애 낳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요?” (산모 A씨)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된 여성의 일상은 흐트러진다. 두세 시간마다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다시 재우기를 반복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가계 재정도 흔들린다. 출산용품, 조리원 비용으로 시작해 각종 사교육비, 육아와 일의 병행, 집 문제 등 아이로 인해 들어가는 직간접적 비용은 크다.

한국에서 출산과 양육의 길은 이미 공인된 가시밭길이다. 나라 곳곳에선 저출생을 걱정하지만, 애를 낳기보단 그 자원을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명민한 청춘들은 알고 있다.

따끔한 독감 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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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오지의 씨가 쓴 ‘출산의 배신'(에이도스)은 저출생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이른바 거대 서사를 다룬 책은 아니다. 저자는 분만을 돕는 의사의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출산과 양육의 명암을 에세이 형식으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애를 낳아 키우는 일은 산모 A씨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예비 엄마들은 임신이라는 장애물부터 맞닥뜨린다. 임신과 출산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고, 예측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임신도 산전 검사도 출산예정일도 아이의 성장도 예측을 보란 듯이 비껴가기 일쑤다. 저자는 “현대인이 좋아하는 예측과 통제에 대한 감각은 인생에서 자녀를 만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한다.

용띠해를 맞아 그림 그리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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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신하면 우선 몸의 변화가 찾아온다. 생식기관에서부터 혈액, 대사, 면역 기능, 뇌의 구조 등 50여 가지쯤 되는 변화가 일어난다. 몸의 변화는 산모의 정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골반 내진과 같은 진찰이나 외부 검사 과정에서 수치심을 겪을 수도 있다. “아기를 품고, 낳고, 키우는 것은 그냥 해도 힘든데” 태교와 같은 사회적 금기나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요구하는 모성 신화도 임신 출산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저자는 모성 신화를 “불필요한 구속”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출산과 양육은 엄마 ‘혼자’서 몸과 마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비극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부터 수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강조한다. “인류 재생산 연대기라는 장편 영화는 엄마의 원맨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10% 넘게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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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정말 가시밭길이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젖먹이였을 땐 한밤에 응급실로 뛰쳐나가야 할 일이 빈번하고, 학교 다닐 때는 괴롭힘 당하지 않을까, 다른 아이들에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며, 커서는 애가 밥 벌이는 할까, 뭐라도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근심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서 키워볼 가치는 있다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이 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에 이만한 크기의 사랑과 행복을 가늠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녀에 대해 지금과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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