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지지했던 유명인사에 ‘배신감’…”‘잘못했다’ 한마디만 했더라면”
86세대 끝까지 믿은 반면 보수쪽은 철저히 외면…”난 어리석었다”
“이념잔치 20세기에 끝냈어야…이분법 논리·80년대 구호와 이젠 결별”
“진정한 자유 얻었다…누구 편에도 서지 않고 내 생각대로 말할 것”
(하동=연합뉴스) 정규득 김지선 기자 =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꽤 오래 친분이 있었기에 배신감은 더 컸죠.”
공지영(60) 작가가 최근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에세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자신이 속했던 소위 ’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학생운동권) 세대’에 대한 절절한 반성문이다.
특히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열렬하게 옹호했던 한 사람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한때 ‘지킴이’를 자임했던 유명인사를 거론해 화제가 됐다.
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자택에서 만난 공 작가는 “욕을 먹으면서도 그를 감쌌던 건 당시로선 나름의 애국이고 희생이었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었구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또 “나중에 과오가 드러났을 때 그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면서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SNS상에서 설전을 벌였던 진중권 교수에게는 “미안해 죽겠다”며 정중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공 작가는 지난 2018년 소설 ‘해리’를 발표했을 당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진보의 탈을 쓴 사기꾼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음에도 우리 86세대는 그래도 자기가 한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것이 화근”이라며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본인들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금의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과거 조·중·동 등 보수성향 매체의 기사는 아예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종편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특정인에게 날을 세웠던 자신이 “얼마나 편향된 사고로 이 모던한 세상을 재단하며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돌아보게 됐다”는 고백이다.
그는 “요즘은 금고 이상 징역형 확정시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게 하자는 한동훈의 주장은 아무리 국민의힘이라도 맞는 말이고, 예전 같으면 ‘박근혜 키즈’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이준석도 옳은 말을 하니 예뻐 보인다고 농담처럼 얘기한다”며 웃기도 했다.
다만 ‘이념의 전향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보수’로 간 것은 아니다”라며 “단 우리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비판적 자세를 취하며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20세기에 진작 끝냈어야 했던 이념 잔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며 “86 운동권이 국회의원이 되고,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는데도 여전히 낡고 이분법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80년대식 구호를 외치는 이데올로기적 동지들과 결별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못 박았다.
공 작가는 “소위 ‘진보적’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면 다수가 되겠지만 말로만 하는 위선자들은 다 싫다”며 “진보, 보수가 아니라 그 앞에 붙는 ‘합리적’, ‘극단적’ 등 수식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간 제목이기도 한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그런 자신을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국힘’이냐고 손가락질해도, 권력에서 멀어지고 소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책이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 진정 자유로워졌다”며 “누구 편에도 서지 않으니 생각하는 대로 말하면 되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그만큼 자제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순례를 다녀온 지 꼭 1년 만에 전쟁이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언젠가는 끝나겠죠”라고 답하는 것이 그가 꼽는 대표적인 변화다. 여기엔 “그저 기도할 뿐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입장을 표명하지 말자”는 결심이 깔려 있다.
활발하게 했던 SNS 활동을 접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그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수화기 너머 노신사는 ‘싸움을 잘하냐’고 묻더니 ‘이길 수 없으면 싸우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그 순간 “번갯불 치는 것 같은 깨우침을 얻었다”는 공 작가는 그 길로 모든 SNS 채널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책을 통해 기꺼이 힘을 실어줄 생각이다. 고(故) 김용균 씨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은 공 작가에게 끝까지 안고 갈 숙제로 남았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작가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그는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천을 그 예로 들었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적군에 투항한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한 사마천의 ‘오지랖’ 역시 작가로서의 숙명이었고, 그 고통 속에서 위대한 고전이 탄생했다는 설명. 인고의 시간을 거쳐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공 작가 본인과 ‘닮은꼴’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과거를 뒤로하고 어느덧 이순(耳順)을 넘긴 그는 올여름 출간을 목표로 86세대 주인공이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소설 ‘5월에 죽다'(가제)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건강하게 살날이 20년도 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까지 쓸 수 있는 만큼만 살살 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머릿속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르와 주제로 가득하다고 한다.
매번 작품에 임하는 각오는 ‘자기복제를 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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