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ㅇ난감’ 감독, 이재명 연상 논란에 “억지 꿰맞추기”

“정치견해 몰래 녹이는 건 저열한 행위…치졸한 방법 쓰지 않는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감독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제가 정치적인 견해를 작품에 반영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치졸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 비정치적인 작품에 감독의 정치 견해를 몰래 녹이는 건 저열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의 연출자 이창희 감독은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감독은 당초 오는 15일 인터뷰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9일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명절 연휴 기간에 드라마와 관련한 논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불거지자 일정을 하루 앞당겨 이날 기자들을 만났다.

의혹에 대해 이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역시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부인한 바 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속 한 장면
[넷플릭스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문제가 된 인물은 7회에 등장하는 재벌그룹 회장 ‘형정국’으로, 배우 승의열이 연기했다. 백발이 섞인 머리카락을 넘겨 이마를 완전히 드러낸 외모와 검은 테 안경이 이재명 대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감독은 배우의 외모에 대해선 “저희 작품에 150명의 배우가 등장한다”며 “해당 배우(승의열)가 특정 정치인과 닮았다고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감독은 형정국의 죄수번호 4421이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가 챙긴 4천421억원과 일치한다거나 형정국이 구치소에서 초밥을 먹는 장면은 이 대표 부인이 법인카드로 초밥을 결제한 의혹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부인했다.

그는 “의상팀에도 재차 확인해봤지만, 형정국의 죄수번호는 아무 의미 없이 갖다 붙인 것”이라며 “정치인과 관련된 숫자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관련성을 부인했다. 또 “초밥을 먹는 장면은 그 인물의 도덕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형정국이 경동맥을 공격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우리 드라마는 (이 대표 피습 사건 전인) 작년 3월 촬영을 마쳐서 시기상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우연의 일치도 있었지만, 억지로 꿰맞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 웃었는데, 점점 일이 커지니까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게 아닌가 해서 고마운 마음도 듭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감독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살인자ㅇ난감’은 우발적인 계기로 사람을 죽인 주인공 이탕(최우식 분)과 탁월한 직감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다.

이탕은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피해자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안도한다. 이후로도 이탕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뒤 피해자가 악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는 일이 반복되자 이탕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흥미로운 사건 전개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력이 더해져 공개 첫 주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물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다.

이 감독은 이 같은 호응에도 “개인적으로는 발전을 위해서 제 작품에 대해선 악평만 찾아보는 편”이라며 “주인공이 중반부를 지나서 사라지는 것 같다는 평가가 있고, 이야기가 산만해진다는 지적도 있다”고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는 “결과를 천천히 돌아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과한 연출은 없었는지 돌이켜보고 항상 의무감을 갖고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 같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감독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살인자ㅇ난감’의 원작인 동명의 웹툰은 드라마 전부터 이미 범죄 스릴러 장르의 명작으로 꼽혔다. 원작은 인물들을 2등신으로 그려 무서운 분위기를 다소 덜어내면서도 긴장감을 극대화해 호평받았다.

다만 드라마로 제작하기에는 다소 난해하고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다. 제목부터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품 제목은 여러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뒀는데, 이 때문에 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에서도 ‘살인자 이응 난감’ ‘살인장난감’ ‘살인자 영 난감’ ‘살인자 오 난감’ 등 부르는 방법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이 감독은 영화 ‘사라진 밤'(2018)과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2019)로 범죄 스릴러 연출에 강점이 있지만, 이런 원작의 여러 특징 때문에 ‘살인자ㅇ난감’ 연출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 이건 힘들지 않을까? 잘 해봐야 본전인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 달리 이 감독은 원작의 긴장감을 드라마로 훌륭하게 살려냈고, 원작자인 꼬마비 작가로부터 “더할 나위 없다”고 칭찬받았다. 그 배경에는 최대한 사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특히 이 감독은 성인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통해 성인 배우의 얼굴을 아역 배우가 연기한 모습 위에 덧씌우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살인자ㅇ난감’ 속 장난감 형사의 어린 시절 장면에서 아역 배우가 손석구와 똑 닮아 시청자들은 “손석구 배우의 아들인 것만 같다”고 감탄했는데, 이 역시 CG로 손석구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딴 얼굴을 아역 배우에게 덧씌운 결과물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린 시절은 아역 배우가 맡는다. 중학생 역할을 하는 배우와 성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얼굴이 다른데 서로 같은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이고, 그게 영화적 허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영화적인 허용을 싫어해서 이번 드라마 속 과거 장면은 모두 CG를 사용했다”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얘기한 분들도 있었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