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패스트 라이브즈, 여백도 자극을 준다

연합뉴스 통통컬처

(서울=연합뉴스) 송영인 PD = 30대의 후반의 부부가 어릴 적 아내의 ‘전남친’과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은 흔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이들의 모습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죠. 영화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105분 동안 이들이 왜 이렇게 ‘불편해’ 보이는 자리에 동석하게 됐는지 설명을 이어갑니다.

평범한 로맨스 추리극 같지만, 이 영화가 전 세계 영화제에서 무려 76관왕에 오르고, 11일에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된 이유는, 바로 이 추리의 과정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노라와 해성은 노라의 이민으로 12살에 헤어집니다. 36살에 뉴욕에서 재회하는데, 영화는 24년에 변화되는 감정을 끈질기게 포착합니다. 하지만 절대 성급하진 않습니다.

속도가 침착하다는 것은, 지금의 영상 수요자들, 즉 빠른 전개와 상상력이 가미된 장르물에 익숙한 이들에게 선호되는 지점은 아닌데요, 그런데도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노라와 해성은 24년 동안 서로를 볼 수 없었지만, 그 이유가 불가항력적이진 않습니다. 노라는 이민 2세대로, 해성은 전형적인 한국 가장의 외아들로 이뤄내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 두 사람이 서로를 ’24년이나 보지 않겠다’고 내린 선택은 스스로가 내린 것이었죠. 이런 상황은 미련과 애틋함을 남깁니다.

카메라는 35mm 필름으로 이 감정을 끈질기게, 또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여기에 목덜미, 등, 손, 입꼬리 등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샷은 지루할 수 있는 흐름을 환기합니다. 배우 유태오와 그레타 리의 알 수 없는 눈빛 연기와 대사 사이의 공백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추측할 시간을 주기도 하죠.

반전, 괴기, 비명, 가상현실 등은 없지만 호기심, 애틋함, 성숙함 등이 영화에 넘쳐흐릅니다. 바로 여기에 영화의 정수가 있습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오랜만에 감정 몰입 상태를 경험하고 싶다면 충분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통통컬처 영상을 확인하세요.

<편집 : 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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