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마이스터 최진 “100분의 1초 차이에 연주 확 다르게 들리죠”

조성진·임윤찬 공연 녹음…악기·연주자·공간 등 소리의 모든 것 총괄

“음반 3∼4일 녹음하면서 연주자 가장 빛나는 순간 포착하는 조력자”

포즈 취하는 톤마이스터 최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진 톤마이스터가 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9
ryousanta@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피아노 건반을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빠르게 연주할 때 상승하는 선율.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짧은 선율 속에서도 어떤 음과 음 사이가 다른 음들과는 다르게 벌어졌는지, 그 미묘한 차이를 잡아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톤마이스터 최진(51)이다.

톤마이스터는 독일어로 소리를 뜻하는 ‘톤'(Ton)과 장인을 뜻하는 ‘마이스터'(Meister)의 합성어로 ‘소리의 장인’을 말한다. 클래식 음반 녹음 전반을 이끄는 리코딩 프로듀서와 녹음 장비를 설치·운영하는 음향 엔지니어를 동시에 수행하는 직책이다. 소리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한다고 보면 된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개인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진은 연주자도 지나칠 만한 미세한 부분들을 어떻게 알아채느냐는 질문에 “그게 들려요”라며 웃었다.

그는 “단편적인 예를 들면 전체 라인이 정말 빠른 속도로 올라가도 불안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며 “빠르거나 느린 그 불안한 음을 100분의 1초만 당기거나 늘려도 연주가 확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음악이 무섭고도 재밌는 건 아주 조그만 부분이 너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인간은 대단하고, 음악은 위대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톤마이스터 최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진 톤마이스터가 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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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에서 호른을 전공한 최진은 일찍이 독일로 건너가 톤마이스터 과정을 밟았다. 톤마이스터는 1950년대 독일에서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교육과정이 생겼지만, 국내는 물론 독일을 제외한 유럽에서도 보편화되진 않았다.

그는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영향으로 듣는 감각을 체득했다”며 “호른을 연주했지만, 한 악기만이 아니라 모든 악기가 같이 어우러지는 연주를 해보고 싶어서 지휘에도 관심을 뒀었다”고 말했다.

최진은 독일 유학을 떠났을 때만 해도 지휘와 톤마이스터를 함께 공부하려고 했지만, 톤마이스터의 공부량이 워낙 방대해 여기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톤마이스터는 악보의 음정, 박자뿐 아니라 악기의 음색, 연주자의 스타일, 공간의 울림 등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공연장에 마이크를 어디에, 얼마나 설치할지 결정하는 것도 톤마이스터다. 오케스트라 공연에는 30∼50개 마이크가 투입된다. 같은 공연장이라도 작품의 특성에 따라, 단원이 몇 명인지에 따라, 악단의 스타일에 따라 마이크를 놓는 위치도 조금씩 달라진다. 국내 주요 공연장, 악단, 연주자와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최진은 “이제 공연장에 들어서면 소리가 보인다”고 웃었다.

톤마이스터 최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진 톤마이스터가 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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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음악은 조사 하나에도 뉘앙스가 휙휙 바뀌는 언어와 비슷하다”며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는 것처럼 음에도 색깔, 셈여림, 캐릭터 등의 억양이 있다”고 했다.

“음악에 맞는 소리를 찾아야 해요. 공간에서, 녹음 과정에서, 연주자에게서 만들어내야 하죠. 그렇다고 제가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드는 건 아니에요. 저는 연주자나 오케스트라가 조금 더 빛을 낼 수 있는 소리를 끌어내는 ‘조력자’죠.”

최진은 인터뷰 내내 자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겸손해했지만, 도이치그라모폰, 데카, 워너클래식스 등 클래식 음반 명가는 그의 날카롭고 예민한 귀와 섬세하고 정확한 기술을 찾는다. 국내 주요 클래식 음반과 공연 녹음은 대부분 최진을 거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조성진, 올해 1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서울시립교향악단 취임 연주회에서 협연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뒤에도 그가 있었다. 조성진과 임윤찬뿐 아니라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거장들과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심포니 등 주요 악단도 그와 오랜 기간 작업해왔다.

톤마이스터 최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진 톤마이스터가 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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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만의 해석과 표현법을 가진 연주자들의 음악에 개입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진은 음악에 정답이 없는 만큼 연주자와 계속해서 조율해나가는 작업이 톤마이스터의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합이 잘 맞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오랜 시간 함께한 거장과는 주고받는 대화가 굉장히 추상적”이라며 “‘이 부분은 파란하늘 느낌으로 가면 좋겠다’고 하면, 정말 파란하늘 느낌이 나온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연주자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연주자가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경험이 쌓이다 보면 더 잘 들리고 많이 보이지만, 톤마이스터는 절대 연주자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3∼4일이 걸리는 음반 녹음을 하다 보면 예민해진 연주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최상의 소리를 끌어내는 것도 톤마스터의 몫이라고 했다.

“제 입에서는 ‘잘했다’ 보다 ‘못했다’는 말이 주로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이걸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중요해요. 때로는 기다려주기도 하죠. 소리가 너무 크다고 지적한 뒤에 소리가 너무 작아졌다면 우선은 넘어가요. 몇 번 더 하다 보면 연주자가 적정한 소리를 결국 찾거든요. 그렇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끌어내는 거죠.”

톤마이스터 최진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진 톤마이스터가 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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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은 최근 몇 년간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고 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공연장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가 10여년 전부터 새 흐름으로 예견했던 공간음향(3D사운드)도 보편화됐다.

덩달아 사운드 엔지니어링에도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모집한 교육 프로그램에는 6명 정원에 113명이 몰렸다. 최진은 이 프로그램 강사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신설되는 관련 학과에서도 강의할 예정이다.

최진은 “모든 제품은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포장도 중요하다”며 “문화에서 상품화가 잘 된 게 K팝이고, 클래식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일하다 보면 10년 전과 지금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온 덕분이죠. 하지만 클래식 녹음 분야에 있어선 우리는 많이 늦은 편이에요. 전반적인 역량을 올리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어요.”

ae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