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 진행한 인터뷰가 지난 9일(현지시간) 공개되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로렌초 부첼라 RTS 기자는 교황에게 “우크라이나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백기를 들고 항복할 용기를 요구한다”며 교황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교황은 협상을 강조하면서 “상황을 살피고 국민을 생각하며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우리 국기는 노란색과 파란색이며, 우리는 다른 깃발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일제히 교황을 비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건 백기가 아니라 무기라고 강조했다.
교황청이 ‘백기’라는 표현은 질문 과정에서 나왔던 용어를 반복한 것이고, 발언의 방점은 ‘항복’이 아닌 ‘협상’에 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일이 있다. 교황청과 중국이 2018년 체결한 주교 임명 관련 잠정 협정이다.
협정을 통해 교황청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를 받아들이고, 중국은 교황을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해 주교 임명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의 절대적 권위의 상징과도 같은 가톨릭 주교의 임명권을 중국 정부에 사실상 양보하면서 양측 관계에 오랜 걸림돌이었던 주교 임명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2년 시한의 이 협정은 2020년 10월 한 차례 갱신됐고 2022년 10월 2년 더 연장됐다.
당시 가톨릭교회 내 보수파는 교황의 주교 임명권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또한 악의 세력인 중국과 대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교황은 어떻게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협상에 나설 수가 있느냐며 반대를 누그러뜨렸다. 실제로 교황은 통 큰 양보를 통한 협상을 택했다.
교황의 이번 ‘백기’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교황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과감한 양보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백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만큼 교황이 절박하게 평화를 간청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이번 백기 발언과 관련한 오해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싶다.
교황은 지난해 6월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며 “대립보다는 만남을 증진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일은 적대행위를 지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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