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덩실 연주하는 밴드 구남 “몸으로 느끼는 호흡, 그 맛 보여줄게요”

이달 29~30일 정규 5집 ‘1969’ 발매 기념 단독 공연

홍대 클럽 구심점 삼아 음반 작업…”음악인들의 마을회관”

파티 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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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연남동 한 클럽의 입구. 계단을 내려가자 녹색 조명이 감도는 희뿌연 공간이 펼쳐진다. 불규칙하게 놓인 의자를 가로질러 시선을 옮긴 곳엔 연주에 흠뻑 취한 밴드가 움직거린다.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듯 몽롱한 모습으로 악기를 튕기고 두드렸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덩실덩실’ 곡선에 가까운 몸짓으로.

“자연스러운 몸짓, 즐거워하는 걸 연주에 담은 거예요. (듣는 이들은) 그런 게 한국적이라고 느껴진 거죠…실은 그냥 이 동네(홍대) 사람들의 몸짓인 거예요.” (조웅)

60~70년대 한국 사이키델릭 밴드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음악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구남을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달 말 열리는 정규 5집 발매 기념 단독 공연을 위해 카페 지하의 라이브 클럽 ‘채널 1969’에서 약 2시간의 합주를 마친 뒤였다.

이번 공연에는 리더인 기타 조웅, 베이스 이기학, 드럼 유주현 등 3인조에 구남의 확장 버전인 ‘파티 구남’의 이지향, 안홍인까지 무대에 오른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죠.” (조웅) “합주를 노는 거라고 생각하면, 놀다 보면 맞춰져요. ‘아 저렇게 놀자고?'” (유주현) “저희 호흡과 멋, 맛을 보여줄 생각 하니까 신나네요.”(이기학)

구남 3인조(조웅·이기학·유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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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공연에서 선보일 정규 5집 ‘1969’는 이름처럼 클럽 ‘채널 1969’를 구심점 삼아 완성한 음반이다.

홍대 인디 신(scene)의 아지트인 채널 1969에서 만난 음악인들이 하나둘 손을 보태 녹음과 뮤직비디오,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이 클럽은) 단순히 술 먹고 노는 클럽이라기보다 커뮤니티에요. 사람들이 꽤 긴 시간 부대껴온 거죠.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비슷한 맥락과 기운의 사람들이고.” (조웅)

조웅은 “(홍대 아지트가) 없어지면서 오갈 데 없는 친구들이 모인 느낌도 있다”며 “홍대 문화가 희석되고 사라지면서 이 클럽이 깔때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웅이 이곳을 홍대인들의 ‘마을회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클럽의 운영자 안홍인은 이곳을 “길거리 정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며 “아무나 와서 장기도 두고 하는 그런 곳”이라고 덧붙였다.

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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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이 이 클럽에서 정규 5집을 녹음한 건 작년 7월 초. 이들은 옛날 방식대로 수록곡 9곡 전부를 순서대로 3차례 연주한 뒤, 그중 마음에 드는 곡을 뽑아 음반을 만들었다.

이기학은 “맨정신으로도 해보고, 술도 마셔보고, 조명도 바꿔보고 했다”며 “녹음 날짜를 이틀로 잡았었는데 ‘오늘 됐다!’하고 하루 만에 끝냈다”고 돌이켰다.

조웅은 원테이크 녹음 방식을 시도한 데 대해 “같이 호흡하며 연주했을 때 훨씬 좋은 기운이 나온다. 그걸 쫓아본 것”이라며 “저희 연주에는 메트로놈(박자를 나타내는 기계)이 없다”고 설명했다.

몸으로 느끼는 호흡. 여기서 오는 자유로움은 멤버들도 느꼈다. “드럼 치는 사람 입장에서 기계 소리가 나오면 딱딱해질 때가 있잖아요.” (유주현) “작품이 나왔는데 듣고 또 듣고…대만족했죠.” (안홍인)

일명 ‘라구즈’로 불리는 퍼포먼스 그룹 이지향과 안홍인은 탬버린과 봉고, 셰이커로 곡에 흥을 뿌렸다. 전문 퍼커셔니스트(타악기 연주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구남 다운 음악이 됐다. 안홍인은 ‘라구즈’의 연주를 “곰탕에 뿌리는 후추 같은 것”이라며 웃었다.

구남 단독 공연 ‘봄에 핀 꽃’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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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4년 주기로 꾸준히 새 앨범을 선보여온 구남은 내년에 어느덧 활동 20주년을 맞는다. 여러 차례 멤버 교체를 겪은 만큼 현 멤버로 지난 곡들을 다시 불러 기념 앨범을 만들까도 고민 중이다.

조웅은 인터뷰에서 “공연도, 앨범도…내년에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20주년이니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시대가 결이 안 맞아요…그거(20주년 프로젝트) 하고 나면 한 번쯤 쉬어도 되지 않나, 멀리서 바라보고 이걸 계속 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는 타이밍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그는 이어 ‘홍대 앞 음악’에 대해 “아이돌 시장이 커지면서 다른 음악 시장은 그늘에 놓인 상황”이라며 “저변이 희박하다 보니 다양성을 시도하는 뮤지션이 줄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오는 29~3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단독 공연 ‘봄에 핀 꽃’을 열고 ‘불발’에서 ‘동해’에 이르기까지 정규 5집 수록곡 전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구남의 서울 라이프’라는 브랜드를 통해 대사관, 미술관 등에서도 공연한다.

acui7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