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누명 쓰고 옥살이한 수형인 인터뷰 담아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우리한테 밥 가져다준 분한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전주형무소라고 그래요. 그때야 ‘아이고, 형무소에 왔구나. 이제는 살았다’ 했지.”
박순석 할머니는 스무살 무렵 바다를 건너 전주형무소에 도착했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듯 감옥에 갇혔는데도, 그는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 화북리에 살던 박 할머니는 1948년 4·3 사건이 발생하자 산으로 도망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군경의 총칼을 피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숨어든 그 산이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거문오름이다.
체포된 다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연병장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고 박 할머니는 떠올린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 채 형무소에 가게 됐지만,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4·3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작품이다. 박 할머니를 비롯해 양농옥,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등 다섯 할머니의 인터뷰로 러닝타임을 꽉 채웠다.
김 감독은 4·3 사건에 얽혀 수형 생활을 한 생존자 약 120명을 만난 뒤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됐으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용감한 기러기상을 받았다.
4·3 사건 당시 스무살 안팎이던 할머니들은 70년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군경이 마을에 처음 들이닥친 시점부터 체포 후 교도소에 가기까지의 과정을 고통에 찬 얼굴로 되짚는다.
박춘옥 할머니는 마을 위쪽에서 학살이 벌어지는 날이면 “핏물이 길가까지 내려왔다”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죄 없는 가족과 이웃이 눈앞에서 죽어 나갔고 온 마을에는 시신이 쌓여갔다.
더 원통한 일은 이다음에 벌어졌다. 경찰이 민간인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 가둔 뒤 고문에 가까운 매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순희 할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몽둥이질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송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도 덩달아 매를 맞았는데, 아무도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는 바람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들은 제대로 된 재판 과정조차 거치지 못했다고 한입으로 말한다. 군사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은 강당이나 공장 같은 곳에 모여 자신들의 혐의도 모르고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누구는 몇 년, 누구는 몇 년”이라고 줄줄 읊으면, 그대로 트럭에 실려 전국의 형무소로 옮겨졌다.
영화는 인터뷰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구성만 놓고 보면 다소 밋밋할 수 있지만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저마다의 사연이 너무나도 처절해 극영화보다 충격이 크다.
박순석 할머니를 포함한 4·3 생존 수형인 18명은 재심 끝에 2019년 1월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계엄령하에 이뤄진 군사재판이 불법임을 사법부가 최초로 인정한 것이다.
누명을 벗은 수형인들은 묵은 한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진 듯 웃음 짓는다. 그렇다고 해서 끔찍한 기억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억울할 뿐이지. 우리 아들, 아버지가 어느 날 어디서 죽은 건지도 몰라. 그래서 생일에 제사를 지내요. 다시 그런 사건 일어나면 나는 그냥 죽어버리지. 그 꼴 안 본다. 아이고…”(박춘옥 할머니)
17일 개봉.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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