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코콩쿠르 우승’ 이승원 “다양한 색깔 내는 지휘자 되고 싶어”

비올라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전향…”노부스 콰르텟 활동하며 귀 섬세하게 열려”

“어렸을 때부터 지휘 꿈꿔…같은 음악도 지휘자 따라 달라지는 음악에 매력”

말코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승원
[말코 지휘 콩쿠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지휘 공부를 시작하던 10년 전부터 꿈꾸던 콩쿠르였어요. 제가 참가하는 날이 올까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파이널이고, 우승까지 하게 됐네요.”

이달 20일(현시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폐막한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지휘자 이승원은 지난 2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콩쿠르를 마치고 이날 저녁 막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이승원은 “사실 아직도 전혀 실감이 안 난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말코 콩쿠르는 브장송 콩쿠르, 말러 콩쿠르와 함께 지휘계에서 권위 높은 콩쿠르로 꼽힌다. 35세 이하 젊은 지휘자를 대상으로 하며, 3년마다 열린다. 올해 콩쿠르에는 20개국에서 24명이 참가해 1·2·3차 라운드를 거쳐 결선을 치렀다.

이승원은 2018년 루마니아 BMI 국제 지휘 콩쿠르, 2019년 대만 타이베이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큰 규모의 콩쿠르 출전을 기다려왔고, 5년 만에 나간 대회에서 쾌거를 이뤘다.

그는 “서류 심사에만 400∼500명이 몰리는 대회여서 초대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여겼다”며 “공부해 간 곡들을 무대에서 다 해 볼 기회가 있을까 싶었을 정도로 우승은 기대도 못 했다”고 겸손해했다.

콩쿠르 측에서 제시한 경연곡 범위가 너무 넓어 이를 준비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실제 대회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될지는 당일 제비뽑기로 결정되기 때문에 제시된 곡을 모두 준비해야 했다.

이승원 “보통 공연할 때는 프로그램 하나만 몇 달을 준비하는데, 공연 5∼6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두 달간 공부했다”며 “총 12곡이었는데 악보들만으로도 캐리어가 다 찰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회에서도 라운드를 끝내면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느라 콩쿠르 기간 내내 매일 4시간밖에 못 잤다”고 덧붙였다.

말코 지휘 콩쿠르에서 지휘하는 이승원
[말코 지휘 콩쿠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콩쿠르 측은 이승원의 우승 소식을 발표하며 1차 라운드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이승원은 1차 라운드에서 하이든의 교향곡 49번 ‘수난’을 하프시코드 반주가 곁들여진 버전으로 선보였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전에 쓰이던 대표적인 건반악기다.

그는 “악보 편성에는 하프시코드가 있지만, 정작 악보에는 하프시코드가 없는 독특한 작품이어서 참가자에게 선택권을 줬다”며 “연주자가 어떻게 연주할지 모르니 대부분 안전하게 하프시코드가 없는 버전을 선택했는데 저는 있는 버전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별한 전략이었다기보다는, 하프시코드가 함께할 때 음악적으로 더 풍성한 사운드를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승원은 최근 국내에서도 지휘자로 종종 포디움에 오르지만, 사실 비올리스트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악사중주팀 ‘노부스 콰르텟’의 전 멤버로 더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비올라를 전공해 20년 넘게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해왔다. 그러다 2018년 지휘자로 전향을 알리며, 노부스 콰르텟에서 탈퇴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휘자가 돼야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카라얀이나 아바도가 지휘하는 비디오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며 “현악사중주를 하는 그 순간에는 너무 행복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지휘에 대한 꿈이 계속 남아있어 2014년 대학교에 다시 가 지휘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어느 날 노부스 콰르텟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일정과 제가 베를린의 한 예술고등학교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일정이 겹쳤어요. 무게를 보면 위그모어홀 공연이 훨씬 중요한데, 지휘 연주를 취소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대로 병행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노부스 콰르텟의) 형들과 상의해 2017년 말까지만 활동하기로 했죠.”

지휘자 이승원
[목프로덕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승원은 9년에 달하는 노부스 콰르텟에서의 경험은 지휘자로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실내악 연주자로서 끊임없이 동료들과 소리를 섞고, 서로 맞추는 과정에서 귀를 섬세하게 열게 됐다”며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큰 실내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승원은 2022년에도 지휘자를 향한 경력을 쌓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부지휘자로 발탁되면서,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비올라 종신 교수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는 종신 교수직을 포기한 데 대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며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부지휘자 경력은 꼭 필요한데, 유럽은 보통 부지휘자 개념이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이승원은 1년 만에 수석 부지휘자로 승진하며 역량을 인정받았고, ‘차세대 지휘자’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그는 콩쿠르 우승 이후의 행보를 묻자 우승 부상으로 얻게 된 오슬로 필하모닉, 댈러스 심포니 등 세계 24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엄청난 기회를 잘 살리고 싶다고 답했다. 국내에서는 오는 27일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경기필하모닉을 지휘한다.

“지휘자는 100명이 소리를 내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잖아요. 오케스트라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안 내지만, 손짓으로 음악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게 매력이에요.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모든 걸 다양하게 하는 지휘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 곡에 따라, 작곡가에 따라 그거에 어울리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색깔이 있는 지휘자보다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됐으면 합니다.”

지휘자 이승원
[목프로덕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e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