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미국 극장가에서 내전 상태의 미국을 그린 영화 ‘시빌 워’가 인기다.
지난 주말까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 영화는 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내전까지 이르게 된 정치적 맥락은 사실상 생략하고, 정치적 성향으로는 상극인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를 서부군(Western Forces)으로 묶으면서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재대결을 벌이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현실에서 분리해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대선 때 이미 1·6 의사당 폭동 사태가 발생한 데다 올해 대선에서도 대선 결과 불복과 그에 따른 정치적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실재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CBS의 1월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1%는 ‘대선 패배가 평화적으로 수용될 것’이라고 답했으나 49%는 ‘폭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우려의 1차적 배경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동적 언행이다.
그는 형사 기소를 앞두고 지난해 3월 체포설을 흘리면서 “거짓 기소가 죽음과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폭력을 선동했다.
또 극우 논객인 터커 칼슨과의 지난해 8월 인터뷰에서는 ‘미국이 내전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에 본 적이 없는 열정과 증오가 있다. 이는 아마도 매우 나쁜 조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차례 형사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 재판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이를 바이든 정부의 ‘정적(政敵) 탄압’, ‘마녀사냥’이라고 거칠게 비판하고 있다.
이에 맞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 하루만 독재’ 발언 등을 부각하면서 이번 대선에 민주주의 수호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여기에다 입법부인 미국 의회는 물론 사법부인 연방 대법원도 분열돼 있다.
더욱이 연방 대법원은 낙태 문제 등에서 보수적 판결을 잇달아 내리면서 미국 내 사회적 대립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영화사 A24가 ‘시빌 워’를 개봉한 것은, 마케팅적 고려가 있었다고 해도 대담해 보인다.
무거운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생명 위협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미국인”이라는 말에 “어떤 종류의 미국인이냐”는 물음이 나오고, 남북 전쟁 당시를 연상시키는 피비린내가 나는 ‘동족상잔’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흥행을 어떻게 봐야할까.
일단 영화는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주별로 흥행에 차이가 없는 데다 영화사가 실시한 조사에서 관람객이 보수 및 진보로 양분돼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런 흥행 현상은 최악의 분열인 내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계심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미국이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자신감과 관련, 바버라 월터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 정치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그런 종류의 일(내전)을 겪기에 우리는 너무 착하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면서 “우리는 이미 아주 큰 내전을 겪은 바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내전은 불가하다’고 쉽게 장담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 ‘시빌 워’의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미국 공영방송 PBS 인터뷰에서 “만약 극단주의자들의 여정에 아무 제약도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정치 양극화 현상에서 예외가 아닌 한국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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