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신간 ‘끝나지 않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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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엄마가 소녀의 손을 잡고 간 곳은 뉴욕 공공도서관의 지역 분관이었다. 엄마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며 사서에게 소녀를 소개하자 사서는 그녀를 어린이책이 꽂혀 있는 서가로 안내하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돼.”

소녀는 그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사방 벽을 빙 둘러 가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기자가 됐고, 비평가가 됐으며 나중에는 작가가 됐다. 20세기 100대 논픽션에 꼽히기도 했던 ‘사나운 애착'(1987)이란 걸출한 회고록을 쓰고, 수많은 글로 여러 작가에 영감을 줘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비비언 고닉 얘기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끝나지 않는 일’은 고닉이 쓴 책에 관한 에세이로, 84세에 발표한 그의 근작(近作)이다. 작가이지만 열렬한 독서가이기도 한 저자가 D.H 로런스 소설 ‘아들과 연인’을 필두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엘리자베스 보웬 등 작가들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들었던 감흥과 소설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세월이 흘러 경험이 축적되면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아들과 연인’을 수십 년의 격차를 두고 여러 차례 읽었는데, 그때마다 좋아하는 인물이 달라졌고,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주제도 바뀌었다고 술회한다. 심지어 오독한 경우도 흔했다. 그 사이 그는 대학생이었다가 직장인이 됐으며 페미니즘에 경도됐다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작가로 거듭났다.

고닉의 에세이는 책에 대한 분석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삶의 변화를 포착한 글이기도 하다. 이 성찰적인 에세이는 앎이 여물지 못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기 환상을 붙잡고 씨름하던 시기를 추억하며, 거쳐온 삶의 단계를 조망하며, 그 시절의 독서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책이다. 또한 끝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문학을 통해 찾아보려는 노년의 탐험이기도 하다.

“책장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하고 앉은 나는 그 책을 새로 읽기 시작했고, ‘지금’ 보니 표시할 만하다고 느껴지는 문장과 대목에 다른 색 펜으로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책을 두꺼운 고무밴드로 묶어 고정한 다음 오랜 세월 그 책이 차지하고 있던 책장 한 자리에 도로 꽂았다. 오래오래 살다가 언젠가 손에 또 다른 색 펜을 들고 그 책을 다시 읽을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항아리. 김선형 옮김.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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