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조선 말에 열린 대상인의 시대…’묵계 1′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 바바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죽어버린 아버지의 혼혈 외모와 구릿빛 머리카락, 신랄한 재치, 생존에 대한 맹렬한 의지 외에는 아무 자산도 없는 소년 ‘데몬 코퍼헤드’가 거침없이 전하는 이야기.
데몬은 새 아버지의 학대와 약물 남용으로 인한 미혼모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위탁 가정을 전전한다.
그 과정에서 데몬은 극심한 빈곤과 아동 노역 등의 현실에 직면하고, 고교 미식축구 선수로 짧은 영광의 순간을 누리는가 했더니 무릎 부상을 입고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고 만다.
장편소설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미국의 작가 바버라 킹솔버의 2023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175년 전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현대 독자들의 의식과 감성에 맞게 새로운 인물과 설정으로 다시 쓴 이 작품은 19세기 영국의 문호 디킨스에 대한 오마주이자 문학적 팬픽(특정 작품의 팬이 쓴 2차 창작물)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런던이라는 무대는 20세기 말 미국 남부 애팔래치아 산악지대 농촌으로 옮겨지고,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생애에 시골 변두리 남자아이의 북미식 원형(原型)인 ‘허클베리 핀’의 태도, 고립된 청소년으로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변하지 않은 것은 대물림되는 가난과 그것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해악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이다.
작가는 ‘감사의 말’에서 이 작품이 전적으로 디킨스가 있었기에 쓰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도적 가난과 그것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아이들에게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열정적으로 비평한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쓴 찰스 디킨스에게 감사한다. 그런 문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내가 사는 지역과 시간대로 그의 소설을 변용해 그가 품었던 분노와 창의력, 공감능력의 도움을 받아 몇 년째 노력한 결과 나는 그를 나의 천재적인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은행나무. 848쪽.
▲ 묵계 1 = 최성현 지음.
조선 말 한양 뒷골목의 돈줄을 쥔 조직 인왕산패는 양반출신 책사 ‘이륜’ 덕에 수많은 경쟁자를 몰아내고 한양의 패자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우두머리 ‘하우도’는 하나뿐인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들 ‘상익’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사고를 친 상익은 강화도로 피신을 가고, 그 사이에 그를 대신해 이륜의 아들 이강하가 중심적 위치로 부상한다. 강화에서 한양으로 돌아온 상익은 자기 자리를 꿰찬 이강하와 그의 아비 이륜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조우한다.
소설 ‘묵계 1’은 18세기 말 개혁군주 정조의 꿈이 스러진 조선에 열린 대상인의 시대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자본의 개념과 질서가 정립되지 않은 조선 말, 오랫동안 나라를 지탱해오던 반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돈의 흐름에 따라 온 사회가 재편되던 자본의 태동기를 무대로 활동하는 온갖 인간 군상을 파노라마처럼 담았다.
김조순, 김관주 등 당대 정계를 주름잡던 실존인물과 사건을 작품 곳곳에 배치해 극의 사실성을 높이고,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인물들 간의 암투와 두뇌 싸움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
작가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인 최성현이다. 그는 영화 ‘역린’과 ‘협상’의 각본에 참여했고 이병헌, 박정민,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작가는 ‘한양의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을 시작으로 조선 말에서 근현대 시기까지 아우르는 총 9부작의 대하 장편소설 집필을 계획 중이며, 영상화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황금가지.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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