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햄릿·귀족 대신 재벌…현대적 시각으로 뒤집은 고전

연극 ‘벚꽃동산’·’맥베스’ 한국으로 배경 옮겨 재해석

‘햄릿’·’하데스타운’은 젠더 스와프…남자 역 여배우가 소화

연극 ‘벚꽃동산’ 공연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고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극의 배경을 현대로 옮기거나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는 등 다양한 변화를 꾀하면서 작품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개막한 연극 ‘벚꽃동산’은 2024년 서울에 사는 재벌 가족이 회사의 경영 악화로 저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가 남긴 유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 등 보편적 주제를 담기 위해 주요 스토리를 제외한 여러 부분을 각색했다.

원작에선 120년 전 러시아 귀족인 라네프스카야 부인이 주인공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재벌 3세 여성 도영이 극의 중심에 있다. ‘리타 길들이기'(1997) 이후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전도연이 이 역할을 맡았다.

원작에 나오는 농노 출신 자본가 로파힌 역할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두식으로 바꿨고 귀족 가문의 하인들은 도영 가족을 위해 일하는 가정부, 비서, 운전기사 등으로 재설정했다.

다음 달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맥베스’도 극 중 배경을 현대 한국으로 옮긴 작품이다. 대대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집안의 장례식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원작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뤘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현대인의 유산 상속 다툼으로 재해석했다.

국립극장 연극 ‘맥베스’ 출연진
[국립극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음 달 첫선을 보이는 국립극단 연극 ‘햄릿’은 햄릿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는 등 주요 배역의 성별에 변화를 줬다.

배우 이봉련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햄릿 공주 역을 맡았다. 해군 장교 출신의 왕위계승자라는 설정은 그대로다.

햄릿의 상대역인 오필리어 역시 남성으로 바뀌었고 길덴스턴, 호레이쇼, 마셀러스 등 햄릿 측근 인물들도 여성으로 설정했다.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에 나오는 시적인 대사는 현대 언어로 수정했다. 또 햄릿과 갈등하는 클로디어스의 선택과 결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등장인물의 선악 구분도 모호하게 재구성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도 이 같은 ‘젠더 스와프'(성별 전환)가 눈에 띈다. 오르페우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헤르메스 역을 여성 배우인 최정원이 맡은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12주신 중 하나로 등장하는 헤르메스는 탄탄하고 날렵한 몸을 자랑하는 남자 신이다. 2021년 ‘하데스타운’ 초연에서도 이 역할은 남성 배우인 최재림과 강홍석이 소화했지만, 올해 재연에선 최정원이 새롭게 합류했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헤르메스 역은 남자가 맡아왔다. 그러다 올해 웨스트엔드 공연에서 여배우 멜러니 라 배리가 캐스팅돼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국립극단 연극 ‘햄릿’ 주연 배우들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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