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병자호란과 삼전도 항복의 후유증은 어땠나…’아버지의 그림자’

사적 ‘서울 삼전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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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 아버지의 그림자 = 계승범 지음.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는 1637년 삼전도로 나아가 ‘오랑캐’에게 예를 표했다. 땅에 아홉 번 머리를 찧으며 무릎 꿇는 ‘치욕’이었다.

한국사에서 병자호란(1636∼1637)은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꼽히지만,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조선 왕조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저자는 1637년 병자호란 패배, 1644년 명 제국의 멸망 등 당대 시대적 상황을 분석한 뒤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깊숙이 들여다본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효가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가 된 ‘효치국가’다.

그는 황제가 곧 아버지이고 임금은 그의 자식이 되는 관계가 조선과 명의 국가관계로 확대됐다고 보고, 이런 ‘그림자’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부자 관계가 상황 논리를 초월하는 절대 가치로 자리 잡은 이상, 청이 새로운 천명을 내걸고 명을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조선왕조의 국가정체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대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점이 눈에 띈다.

사계절.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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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 속 오례의, 그 정치성을 읽다 = 박수정 지음.

1744년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 책.

조선 시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명민한 군주’ 영조(재위 1724∼1776)가 기존의 ‘국조오례의’가 있는 상황에서 ‘국조속오례의’를 펴내게 된 이유에 주목한다.

오례의는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 등 국가의 기본예식인 오례의 예법과 절차를 정리한 책으로, 영조는 270년 만에 증보편에 해당하는 속오례의를 펴냈다.

당시 조선 왕실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맞지 않은 부분이 생겼다고 이유를 밝혔으나, 실질적으로는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영조는 의례를 통해 왕의 정통성과 절대성을 내세우고 왕위의 정당성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 중흥의 군주로 거듭나고자 했다.”

복잡한 의례 논쟁부터 오례 분석까지 영조 대의 오례를 집대성했다.

지식산업사.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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