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찾아가고, 비행기 따라타는 무서운 팬…가수는 “하지마” 호소

소속사 무관용 대응에도 사생활 침해…”해외 호텔 무단 침입하기도”

“사생활 침해 저지르면 팬 아니라는 인식 늘어나는 추세”

가수 김재중
[김재중 유튜브 ‘재친구’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사생팬이) 집에 들어오는 건 당연하고, 자고 있을 때 나한테 키스하던 사람이 숙소에서 잡히는 일도 있었어.”

가수 김재중이 과거 동방신기와 JYJ로 활동하던 시기 경험한 사생활 침해 사례를 들려주자, 이야기를 듣던 후배 아이돌이 충격을 받고 손으로 입을 가린다.

아이돌 선배의 과거 이야기에 후배가 놀라는 모습만 보면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무서운 팬들이 등장하는 괴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씨엔블루 정용화
[FNC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5일 가요계에 따르면 밴드 씨엔블루는 지난 21일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 아티스트의 사생활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아티스트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모든 이벤트 참여가 금지되는 등 불이익이 적용된다”고 공지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특정 팬이 멤버가 자주 가는 곳을 알아내 따라가고, 자택을 찾아가 경비원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멤버 이웃과 가족에게 피해가 가는 행위라 공식적으로 자제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룹 제로베이스원도 20일 아티스트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 연락을 시도하거나 거주지에 무단 침입하는 행위를 경찰에 고소했다.

K팝 아티스트의 해외 일정이 늘며 비행기에서 사생활 침해를 경험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불법으로 정보를 거래한 이들이 비행기에서 근접 접촉을 시도하고 아티스트의 좌석을 임의로 변경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태현은 지난 6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팬 사인회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누가 멤버들의 좌석 기내식만 미리 예약해 바꿔뒀다”며 “안 먹으면 그만이긴 한데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소속사 하이브도 아티스트의 항공권 정보를 불법으로 확보해 수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긴 SNS 계정 운영자를 경찰에 신고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태현
4월 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미니앨범 발매 쇼케이스에서 태현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돌이 사생활 침해로 피해를 겪는 사례는 대형 팬덤이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K팝의 오래된 문제다.

김재중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재친구’에서 “과거 H.O.T 시절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무작정 찾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우리 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이 결합해 더 심해졌다”며 사생활 침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신곡 ‘하지마’에 “밤마다 전화하지 마, 숨 막혀 돈 받고 번호 팔지 마”라는 가사로 사생활 침해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업계는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구입해 아티스트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팬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방식으로 피해가 재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소속사들도 무관용 원칙으로 사생활 침해에 대응하고 있지만, 대개 온라인으로 활동하며 흔적을 곧바로 지우는 경우가 많아 적발해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일정을 나가보면 아티스트의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우연을 가장하는 노력도 없이 비행기에 타고, 호텔에 침입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사생활 침해 문제를 근절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항공권 정보 판매글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뚤어진 팬심을 SNS가 사회에 자리를 잡으며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팬들도 이러한 부작용을 인식하고 ‘사생팬은 팬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SNS 사회가 도래하며 누구나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해졌고, 그러면서 자신만 아는 콘텐츠를 손에 넣고 싶다는 심리도 강해졌다”며 “그러한 심리를 파고들어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수입을 올리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나타나게 됐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들도 점차 아티스트의 사생활 침해가 스토킹에 해당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생활 침해를 저지르는 이들을 같은 팬으로 지칭하지 말아달라 요구하는 등 팬 문화를 바꾸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