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할리 퀸 멜로…호연 빛나지만 형식·스토리 호불호 갈릴 듯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는 전 세계에서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의 수익을 올린 흥행작이지만 관객의 평가는 뚜렷하게 갈린다.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조커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나, 범죄자에게 연민의 서사를 부여한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게 거셌다.
주변 남성들에게는 무시당하는 조커가 이웃집 여자와 상상 연애를 하고 그의 집에 침입하는 장면은 ‘인셀'(연애를 하고 싶어 함에도 하지 못하는 남자)을 지나치게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5년 만에 나오는 속편 ‘조커: 폴리 아 되'(이하 ‘조커 2’)에서 조커(호아킨 피닉스 분)는 드디어 진짜 연애를 한다. 조커 못지않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정신질환자 할리 퀸(레이디 가가)이 그의 짝이다.
두 사람은 정신이상 범죄자들을 가둬 놓는 아캄 수용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 조커는 2년 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 혐의로, 할리 퀸은 부모님 집에 불을 질렀다는 이유로 이곳에 갇혔다.
아캄은 로맨스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장소지만 사랑에 빠진 조커와 할리 퀸에게는 이곳이 ‘라라랜드’다.
첫눈에 반한 둘은 그윽한 눈빛으로 로맨틱한 노래를 주고받는다. 서로를 안은 채 춤을 추기도 한다. 온통 회색빛인 아캄은 이들 눈에는 총천연색의 별천지다.
1편과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점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뮤지컬 요소를 적극 활용해 이들의 광란의 사랑을 보여준다. 머릿속에서 늘 음악이 흘러나오는 조커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낸 결과다.
부제인 ‘폴리 아 되’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정신 질환인 ‘공유 정신병적 장애’를 일컫는다. 조커와 할리 퀸이 동시에 나오는 2편은 조커 한 명이 이끌어갔던 1편보다 광적인 분위기가 두 배가 됐다는 말이다.
조커가 망상 속에서 할리 퀸과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관객도 덩달아 정신이 산란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전개로 인해 혼란함은 가중된다.
그간 그로테스크한 뮤지컬 영화가 거의 없었던 만큼 이 작품의 형식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뚜렷하게 갈릴 듯하다.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대화하던 조커와 할리 퀸이 배경음악 없이 노래하는 광경이 다소 생뚱맞게 다가올 수도 있다.
스토리와 엔딩 역시 마찬가지다. ‘조커 2’는 크게 조커·할리 퀸 커플의 로맨스와 조커의 최종 재판 과정이라는 두 줄기로 이뤄졌다. 조커가 맞이하는 사랑과 범죄의 결말 모두 누군가에겐 고개를 끄덕이게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실망을 안길 것 같다. 특히 1편과 조커 캐릭터를 좋아하던 팬들에겐 배신감마저 느끼게 할 수 있다.
상업 영화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재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윤리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1편에서는 코미디언을 꿈꾸던 남자 아서가 조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편에서는 그런 드라마틱함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조커가 전편을 비롯해 ‘다크나이트’와 ‘배트맨’ 등 시리즈에서 뽐냈던 악당다운 모습이 이번 영화에선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조커 2’에서 이전보다 부쩍 쇠약해진 조커는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거나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필립스 감독은 조커는 부조리한 사회가 만든 괴물일 뿐 진짜 그의 모습은 겁 많고 찌질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조커 2’는 1편에 대한 반성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점에서 관객의 반응이 나뉠 ‘조커 2’지만,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의 미친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1편으로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등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피닉스는 2편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사회 부적응자 아서와 무자비한 살인마 조커 사이를 넘나들며 급격한 감정 변화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갈라진 목소리로 투박하게 부르는 노랫소리는 진짜 조커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릴 정도다.
조커와 할리 퀸의 노래 시퀀스는 가가의 제안으로 촬영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됐다. 피닉스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시도라고 생각했다가 즉석에서 부른 노래야말로 순간의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동의했다고 한다.
가가는 그동안 봐왔던 할리 퀸과는 다른 색채의 할리 퀸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이나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에서 마고 로비가 표현한 할리 퀸보다 덜 과장되고 차분하지만 가장 현실적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팝스타이자 ‘스타 이즈 본'(2018)으로 오스카 주제가상까지 받은 배우답게 뛰어난 노래 실력도 뽐낸다.
10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38분.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