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러시아 미녀의 조건은?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미녀를 언급할 때 러시아를 드는 경우가 많다.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대작, ‘안나 카레니나'(1877)가 미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를 미녀로 적시하지 않았다. 미녀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녀로 서술했다.

‘안나 카레니나’ 하면 꼭 언급되는 그림이 있다.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 대표작, ‘미지의 여인'(1883)이다.

‘미지의 여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19세기 러시아 미술사에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미술 운동을 전개한 ‘이동파’라는 그룹이 등장하는데, 그 리더가 크람스코이였다.

‘안나 카레니나’ 집필 때 크람스코이가 톨스토이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들어 이 여인을 소설 속 안나로 보는 게 정설이다. 크람스코이도 안나를 당당하고 도도한 여성으로 묘사했다.

러시아 미술사 최고 작가로 꼽히는 이는 ‘천의 얼굴을 그린 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다. 레핀은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등 모든 장르에서 러시아 대표작을 수두룩하게 양산한 천재였다.

그의 초상화 중 대표로 꼽는 작품이 ‘가을 화환, 베라 레핀 초상'(1892)이다. 가을 들판에 꽃을 들고 보일락 말락 미소를 던지는 여자는 레핀의 딸이다. 딸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그린 작품일 것겠지만, “어때? 이 정도면 미인이지”,하는 자신감도 드러낸 것 같다.

‘가을 화환, 베라 레핀 초상’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러시아 미술사에 수많은 여성이 등장하지만, 러시아인들이 자부하는 전통 미녀를 그린 화가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1878~1927)다. 그가 초상을 잘 그린 건 레핀 제자였던 덕이다.

대표작은 1915년 작품, ‘미(美)’다. 잠자리에 들려는 한 나체 소녀가 화려한 침실에서 수줍은 듯 웃고 있다. 8등신 미녀와는 거리가 있으며, 몸집은 17세기 바로크 대가 루벤스가 그린 여성들처럼 매우 풍만하다.

‘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약 10년 후 작품, ‘러시아 비너스'(1926)는 위 소녀를 나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그린 것 같다. 금발 머리에 비슷한 몸집을 가진 소녀가 러시아 전통 목욕을 하던 중 맑고 환하게 웃는다.

‘러시아 비너스’
니즈니 노브고로드 미술관 소장

‘상인 부인과 차'(1918)라는 작품 속 여성은 이 소녀가 부유한 상인과 결혼해 성숙해진 모습인 듯하다. 오늘날 우리 눈엔 시급히 다이어트가 필요해 보일 만큼 둥근 얼굴, 넓은 어깨, 굵은 팔목 등을 가진 여성이다.

‘상인 부인과 차’
러시아 미술관 소장

그녀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간 ‘상인 부인 장보기'(1920)에서도 의상만 바뀌었을 뿐, 다이어트는 하나도 시도하지 않은 모습이다. 뒤를 따르는 시종과 비교하면, ‘거대하다’

‘상인 부인 장보기’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이처럼 쿠스토디예프는 풍만함이 특징인 러시아 전통 미녀를 자주 그렸다. 당시 러시아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탐스러운 살집이었다. 춥고 혹독한 기후 영향으로 본다.

쿠스토디예프 다른 특기는 풍경화다. 초상화 페이지를 넘겨 발견한 그의 풍경화에 입이 쩍 벌어진다.

‘수영'(1921)은 짧게 지나가는 러시아 여름 장면을 그린 것이다. 싱그러운 숲과 물속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물은 크게 그리지 않으며 자연이 주는 환희를 강조했지만, 여기 여성도 날씬함과는 거리가 멀다.

‘수영’
개인 소장

긴 겨울을 보낸 러시아 산하에 봄이 왔다. 온통 연두로 넘친다. 나무는 물론이고, 쌓였던 눈이 녹아 물이 넘치는 땅, 집, 지붕도 온통 연두다. 그 덕에 풋풋한 공기마저 연두의 미감으로 마음을 적신다. 집들 일부에 칠한 분홍은 연두의 ‘휘발’이다. ‘봄'(1921)이다.

좁고 흥건한 길을 건너 병사에게로 향하는 두 여성 몸체는 쿠스토디예프가 꾸준히 그린 통통한 러시아 미녀들일 것이다.

‘봄’
개인 소장

러시아 문호 중 한 사람인 안톤 체호프(1860~1904)는 단편 소설 ‘미녀’에서 이렇게 썼다.

“내 앞에 ‘미녀’가 서 있었다. 번개를 한 번 보면 알듯, 나는 그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그녀가 내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 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왜 슬펐을까? 미녀를 보는 남자의 단순한 심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조국에 대한 애환을 미녀에게서 감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쿠스토디예프도 그랬을까?

병마에 시달리던 쿠스토디예프는 1916년부터 하반신이 마비돼 야외로 나갈 수 없었지만, 죽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러시아에 대한 애정, 자연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고국에 대한 사랑은 사람과 풍경으로 귀환하는 법이다.

doh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