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희망 담은 신간 ‘와해된, 몸’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대학 교수인 크리스티나 크로스비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다. 50세였던 2003년 10월 1일, 그날도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전거 앞바퀴 살에 나뭇가지가 걸렸고, 그녀는 새처럼 잠깐 하늘을 날다가 곧이어 노면에 처박혔다. 얼굴이 망가지고 5번과 6번 경추가 부러졌으며 부러진 뼈에 척수가 긁혀 전신이 마비됐다. 뒤따라오던 차량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진 크로스비는 이틀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간 ‘와해된 몸'(에디투스)은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한 중년 여성이 겪는 일상을 그린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다. 저자인 크로스비는 불구가 된 후 느낀 일상의 불편함과 돌봄 행정의 허술함,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우정을 조명하며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에 따르면 크로스비는 정신을 차린 후 목에 튜브가 삽관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방귀를 뀌는 것조차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도 다리나 팔을 올리거나 손을 쓸 수 없었다. 특수병원으로 옮겨져 몇 달을 치료받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삶이 더는 “찬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전거로 40마일(약 64㎞)을 달리고, 사막의 협곡을 하이킹해서 오르거나, 바다에서 카약을 타고, 오토바이를 모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이제 더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고난도의 스포츠는 고사하고 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간호조무사 도나의 도움 없인 목욕도 못 했다. 도나는 저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2층으로 데려갈 리프트 의자로, 리프트 의자에서 욕실 밖 벽장에 보관하는 접이식 휠체어로, 휠체어에서 변기와 욕조에 걸쳐져 있는 샤워 벤치로, 그리고 욕조 안에 있는 샤워 의자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목욕을 마친 후 침대로 돌아가려면 다시 그 역순을 밟아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억울함이 치솟았다. 커리어의 정점에 달할 시기에 다치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해서다. 소득도 줄었고, 일도 줄었다. 사고 후 2년 만에 복직할 수 있었지만, 전일제가 아니라 반일제 연구교수 자리였다. ‘나만 왜’라는 억울함에 이어 이제는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비애가 찾아왔다.
그러나 신경 쓰지 못한 점도 많이 깨닫게 됐다. 16시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만 받는 도나와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됐다. 장애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건축법규, 교육정책이 모두 미비했다. 심지어 움직이지 않는 엘리베이터, 오지 않는 스쿨버스 등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돌봄이란 친구, 동료, 지인 등 여러 사람으로 이뤄진 하나의 관계망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크로스비는 이런 돌봄의 관계망을 통해 오늘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인생의 화양연화는 끝났지만, 그를 사랑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삼고서, 그리고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글쓰기에 의탁하면서 말이다.
“패티는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는 내게 연필을 건넸다. 나는 혼신을 다해 연필을 쥐고 자넷과 나의 간호사 위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책장을 넘겼다. ‘내 삶을 되찾겠어’ 눈물을 흘리며 나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내 삶을 되찾았어’라고. 우리 넷은 함께 울었다.”
최이슬기 옮김.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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