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극장판 배우·감독으로 부산영화제 초청…”맛집 찾으려 한국 탐험”
“한국은 가까운 나라…드라마로 인연 이어지면 한일관계 좋아질 것”
(부산=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하라가…헷타!”(腹が減った·배가 고프다)
일본 민영방송 TV도쿄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시청자라면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식당을 찾으러 나서기 전에 내뱉는 이 대사만을 기다릴 듯하다.
수입잡화상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 고로는 다른 일에 열중하다가도 배가 고파지면 홀린 듯 식당을 찾아 헤매고, 보는 것만으로 침이 고일 만큼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아저씨가 밥 먹는 이야기를 축으로 삼아 2012년 시작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오래 사랑받고 있다. 12년간 주인공을 맡은 마쓰시게 유타카 역시 극중 이름인 ‘고로’로 불리며 인기를 누린다.
그는 최근 첫 극장판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2일 개막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고, 레드카펫을 밟은 마쓰시게는 관객에게서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12년 전 이 드라마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걸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불안했어요. 이런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는 건 꿈도 못 꿨죠. 맛있게 먹는 배우로서 다양한 기회를 얻고 감독까지 맡은 것은 음식이 만들어준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쓰시게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상영을 앞두고 3일 부산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첫 영화를 내놓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영화를 늘 동경해왔지만 (막상 연출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힘들면서도 스릴 있었다”면서 “지금 예순한살이라 앞으로 살날이 그렇게 길지 않은데 도전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며 웃었다.
마쓰시게는 ‘고독한 미식가’ 영화화를 결심한 초기 봉준호 감독에게 편지를 써 연출을 맡아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봉 감독의 영화 ‘도쿄!'(2009)에 출연하며 연을 맺은 바 있다.
“무모한 시도인 줄 알면서도 부탁을 드렸어요. 봉 감독님이 답장으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어렵게 됐다. 하지만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겠다’라고 하셨지요. 봉 감독님이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제가 이 영화를 연출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하하.”
결국 마쓰시게가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된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프랑스에 사는 노인에게서 어릴 적 먹었던 수프의 재료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고로가 한국과 일본에 오가며 음식을 맛보고, 국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경남 남풍도와 거제시 구조라 마을 등을 찾아 닭 보쌈과 황태해장국 등을 먹는다.
배우로 출연한 드라마에서는 제작진이 꼽은 맛집에 앉아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면, 감독까지 맡은 영화에선 직접 장소와 음식을 선정하고 촬영 허가도 받아야 했다.
그는 “음식 코디네이터와 함께 한국을 탐험하며 (맛집 등) 촬영 장소를 찾았다”며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여러 가지 한국 식재료로 맛을 실험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이 작품에는 한국 배우 유재명이 출연해 더욱 반가움을 안긴다. 밥을 맛깔스럽게 먹는 고로를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침을 꼴깍꼴깍 삼켜 웃음을 안기는 캐릭터다.
마쓰시게는 “한국을 중심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한국 배우가 출연하기를 바랐다”며 “그러던 차에 유재명이 주연한 영화 ‘소리도 없이’를 봤고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출연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한식을 즐기는 마쓰시게는 촬영 때가 아니더라도 한국을 찾아 삼겹살, 삼계탕, 비빔밥 등을 먹곤 한다. 이번 영화에선 한국과 일본의 화합을 상징하는 음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후쿠오카에서 나고 자라며 한국 라디오 방송을 자주 들었고 늘 가까운 나라로 여겼다”며 “아시아는 운명공동체인 만큼 문화와 산업 전반에서 함께 손잡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시청자들이 ‘고독한 미식가’를 즐겨주셔서 매우 놀랍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뿐인 데서 매력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드라마를 매개로 한국과 일본의 인연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국 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는 이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와서 미소 지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