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투어’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전작 6편 특별전도 열려
(부산=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를 모두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게 영화의 미덕이지요. 저는 늘 이 두 가지를 함께 놓고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출신 감독 미겔 고메스는 4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영화관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신작 ‘그랜드 투어’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영화제에 참석 중이다.
‘그랜드 투어’는 앞서 5월 고메스 감독에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작품으로, 1918년 미얀마 양곤에 사는 영국 공무원 에드워드가 결혼을 앞두고 도망치자 약혼녀 몰리가 그를 쫓는 과정을 그린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합쳐진 듯한 형식이 특징이다.
고메스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아시아를 다니며 촬영부터 했다”며 “그 이미지에 반응해서 픽션을 썼다”고 돌아봤다.
이 영화는 배경이 되는 국가가 바뀔 때마다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언어도 함께 바뀌고,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오가는 등 실험적인 연출이 눈에 띈다.
고메스 감독은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서 ‘말도 안 된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관객은 자기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출법이 제 영화에선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전 원래부터 실제와 픽션을 합친 방식에 집착해왔어요. 영화는 전기와 같아요.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이뤄진 배터리가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지요.”
그는 2019년부터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에서 영상을 찍었다. 수확, 종교 축제, 오토바이 행렬 등 현실적인 아시아 이미지와 고메스 감독이 상상한 아시아의 모습이 공존한다.
고메스 감독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아시아를 바라본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제가 중국인이나 베트남인처럼 영화를 만들 순 없다. 어느 나라에서 찍든 내 시선으로 찍을 뿐”이라면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매 장면을) 아시아 관객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중국 국경이 폐쇄되자 중국에 팀을 꾸린 뒤 ‘원격 촬영’을 하는 과감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던 그는 촬영팀에게 실시간으로 지시해 중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고메스 감독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카메라를 (내 마음대로) 조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촬영 방식이 결국 먹히더라”고 회상했다.
독특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유럽에서 인정받은 고메스 감독이지만,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특별전을 마련해 그의 장편 영화 ‘네게 마땅한 얼굴’, ‘친애하는 8월’, ‘천일야화’, ‘타부’ 등을 소개한다.
고메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중심의 영화제라 생각한다”며 “이런 곳에서 저의 전작을 상영해줘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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