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 70주년 심포지엄서 ‘포스트휴먼 시대 예술의 미래’ 논의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연극은 흉내 내기입니다. 감정이 없는 휴머노이드(인간의 형태나 특징을 지닌 로봇)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햄릿’을 흉내 낼 수 있어요.”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 행위의 주체가 더 이상 인간으로 한정되지 않을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의 예술을 두고 깊은 논의가 오가는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개원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예술원은 4일 오후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7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대한민국 미래 예술의 방향성을 논의한 이날 행사에선 연극을 비롯해 문학과 미술, 음악, 무용, 영화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가자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끈 분야는 연극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연극인들은 AI 기술 발달로 극작가와 연출가는 물론 연극배우들의 위상에도 심각한 변화가 예상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자로 참가한 이강백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는 “극작가가 한 작품을 쓰려면 3∼4년이 걸리지만 AI는 30∼40분이면 작품을 내놓는다”면서 “AI의 작품은 명작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쓸모없는 극작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극배우와 관련해서도 “포스트 휴먼 시대의 연극은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융합이 보편화될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인간 배우의 위상은 휴머노이드 배우보다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정옥 상명대 교양학부 교수도 “인간 신경계의 기능을 따라해 기계가 직접 느끼고 판단하고 심층의 국면을 해석하는 창의적이고 비평적인 활동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은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도 심각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임성훈 성신여대 미학과 교수는 “포스트 휴먼 시대에 미술가는 과거의 도구나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미술이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대창 광주교대 음악교육과 교수도 ” AI가 인간의 신경망을 그대로 따를수록 AI 음악은 인간의 음악이나 다를 바 없게 된다”면서 “인간이 거대 데이터의 AI와 협업하는 음악 활동에 젖어 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포스트휴먼’ 시대가 초래할 예술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만방 숙명여대 음대 명예교수는 “현 인류가 바라는 희망 사항들에 기대 포스트휴먼 시대의 담론을 대할 수는 없다”면서 “오늘의 담론이 학술적 논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처할 자세와 해결 방법까지 담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예술 주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윤리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심정민 한국춤평론가회 회장은 “포스트휴먼 시대 신체의 다양한 변화 양상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한다”면서 “반드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