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남자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여자는 무덤을 파헤쳐 남자친구 시신을 옮긴다. 조금씩 썩어들어가는 시신을 외딴 냉동 창고에 넣어두고 여자는 가만히 고민한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박제해 영원히 곁에 둘까, 아니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줘야 할까.
‘박제하는 시간’은 박제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중심으로 죽음과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웹툰이다.
주인공 안도연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일하는 박제사. 동물 사체를 박제해서 원모습을 오래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통 호랑이처럼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의 사체를 박제하지만, 때때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영원히 남기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도연은 번번이 이를 거절한다. 이미 죽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냉정해 보이던 도연도 13년간 사귄 남자친구 임현모가 죽자 크게 흔들린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현모의 시신을 빼돌려 외진 숲속 작업실에 옮긴다. 하지만 종이에 손만 베여도 아파하던 남자친구를 날카로운 메스로 가를 자신은 아직 없다.
이 와중에 파묘 현장을 지켜봤다는 수상한 목격자가 도연의 앞에 등장한다. 친구와 현모의 가족들도 제각기 도연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박제사라는 생소한 직업이 이야기에 흥미를 더한다. 생명이 꺼진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팽팽한 근육과 한 올 한 올 섬세한 털까지 그대로 복원하는 과정이 촘촘히 그려졌다.
현모의 직업은 사진사인데, 박제사와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아두는 일을 강조하는 듯하다.
목탄으로 그린 듯한 흑백 톤에 죽음과 시신이라는 소재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다.
하지만 한없이 우울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도연이 죽음과 상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성장기에 가깝다.
도연은 평생 자기 주변의 죽음을 외면해왔다.
현모가 죽었을 때는 빈소 입구에서 돌아서고, 엄마의 죽음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애써 외면했지만, 그동안 도연은 자라지도 숨 쉬지도 못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고 과거의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였을 때야 비로소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네이버웹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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