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숨긴 악역 최나겸 역…”집착하는 공허한 마음에 공감”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매일매일 덕미의 시선에서 일지를 쓰면서 감정선을 그려갔어요. 덕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죠.”
톱스타가 된 최나겸의 어릴 적 이름은 최덕미였다. 독한 노력으로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존재감 없던 고등학생 최덕미로 살던 시절에 경험한 결핍에 발이 묶여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자신과 달리 모두의 선망을 받던 반장 고정우를 여전히 짝사랑 중이다. 정우가 살인을 저지른 죄로 감옥에 갇혀있는 10년 내내 그를 면회하러 갔고, 마침내 그가 출소하자 나겸은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라도 정우와 함께 가정을 꾸리려 한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블랙아웃'(이하 ‘백설공주에게’)에서 반전을 숨긴 캐릭터 최나겸을 연기한 배우 고보결은 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캐릭터의 심리를 쫓아가려고 일지를 꾸준히 썼다”고 밝혔다.
그는 “변영주 감독님이 이 작품의 장르는 스릴러지만, 나겸이는 멜로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거기서 연기의 해답을 얻었다. 스릴러에 맞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겸이의 마음을 읽는 데 더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고보결은 최나겸을 “실제 모습을 감추려고 하지만, 그런데도 모난 부분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인물이었다”며 “그런 나겸이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부터 하루씩 복기하며 그의 사고를 따라가 봤다”고 말했다.
“다른 작품을 할 때도 일지를 자주 써요. 서 있기만 해도 그 배역으로 보이는 연기를 목표로 하는데, 일지를 쓰는 게 그 인물에 대한 최대한 많은 디테일을 머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하루는 최나겸으로서 초상화를 그려봤는데, 얼굴과 몸이 조각조각 나 있는 그림이 완성됐다고 한다.
그는 “최나겸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 예쁠 것 같은 모습을 조각조각 붙여놓은 느낌이었다”며 “‘정우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어떤 모습일까?’, ‘대중이 원하는 배우 최나겸은 누구일까?’를 자주 고민하는데, 모든 기준이 타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기 인생이 남에게만 맞춰져 있다 보니 공허함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최나겸은 열등감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악역이었지만, 고보결은 그런 최나겸의 모습에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고보결은 “나겸이가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고정우에게 집착하듯이 저는 연기에 집착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나누는 대화는 늘 연기를 주제로 삼았다”며 “작품을 시작하면 모든 일상을 그 작품에 맞추며 살다 보니 작품이 없을 때 아주 큰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큰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이뤄야만 내 삶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집착이 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에 수석 입학해 조기 졸업한 고보결은 연극 무대에 서다가 2011년 영화 ‘거북이들’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프로듀사’, ‘디어 마이 프렌즈’, ‘도깨비’, ‘고백부부’, ‘마더’ 등에 조연으로 출연해왔다.
2020년에는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서 첫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아 도도한 모습 뒤에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간호사 출신 재혼녀 오민정을 섬세하게 묘사해내며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고보결은 “변영주 감독님이 이번 작품이 제 출세작이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첫 악역 연기를 하면서 주변에서 ‘고보결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좋았어요. 전 앞으로도 보여드릴 모습이 너무 많은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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