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인터뷰…”AI, 사람 손으로 그린 그림의 본질적인 부분 흉내 못 낸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주인공이 빗속에서 달리는 장면이 18초간 이어져요.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물웅덩이를 차거나 점프하며 뛰는 장면이라 대량의 원화 작업이 필요했거든요. 정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수정이 어려워 단 한 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장면이라 남을 시킬 수도 없고, 제가 다 그렸죠.”
일본 애니메이션 ‘룩백’을 만든 오시야마 기요타카(押山淸高·42) 감독은 11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내한 인터뷰에서 ‘룩백’의 가장 역동적인 장면을 만든 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룩백’은 초등학생 시절 만난 후지노와 쿄모토 두 소녀가 함께 열정적으로 만화를 그리다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의 애니메이션이다.
누적 판매 2천700만부를 기록한 ‘체인소 맨’의 후지모토 다쓰키 작가가 만든 단편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화됐으며, 일본에서 개봉 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흥행했다.
오시야마 감독은 ‘룩백’이 지난달 5일 국내 개봉한 뒤 누적관객 수 약 26만명을 기록한 것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외국과 교류가 없는 채로 일본 제작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만든 애니메이션이 해외에서 사랑받는 것이 얼떨떨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고, 재해가 일어나면서 일상 속에 좌절감이 쌓인 가운데 ‘룩백’도 주인공이 스스로를 좌절 속에서 구제하려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공감했을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꼽았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의 표정과 몸짓도 인기 요인으로 언급된다.
오시야마 감독은 “후지노가 좌절감에서 해방되고 환희에 차서 뛰는 장면을 그릴 때는 저도 스튜디오 안에서 달려보고, 거울을 통해 표정을 살피며 그렸다”며 “비가 떨어지는 장면은 욕실에 물을 채워두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매우 정적이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엔딩 크레딧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품 말미에 후지노는 슬픔을 뒤로하고 작업실로 돌아와 일을 한다.
해가 뜨고 지고, 어둑해지는 배경 속에서 후지노의 뒷모습만 한 없이 비추는 장면으로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는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여운을 많이 담기 위해 일부러 만든 엔딩”이라며 “후지노를 위한 감독의 선물이자 응원의 의미도 담겼다”고 설명했다.
또 “후지노가 ‘IF'(만약)라는 가정으로 쿄모토를 구하는 세계도 그렸지만, 스스로는 쿄모토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며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라고 해설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려내는 애니메이터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AI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 오히려 인간이 그린 선을 적극적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통상 애니메이션 동화 작업을 할 때 원화의 선을 지우는데, ‘룩백’에서는 이를 남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가 밑그림을 남기는 것까지 재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가짜 아니냐?”며 “본질적인 부분은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시야마 감독은 한국에서 팬들도 만난다.
오는 12∼13일 서울 메가박스 성수, 홍대 등지에서 무대인사와 사인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