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 노마 히데키의 ‘K-팝 원론’…”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
뮤직비디오 속 표현·의미 분석…언어학 시각서 본 노랫말 특징 눈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새로운 곡이 발표되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음악 차트가 요동친다. 유튜브로 공개된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각국 언어로 응원하는 댓글이 달린다.
공식적인 첫 무대는 미국의 인기 토크쇼. 영어 인터뷰도 문제없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의 간판 출연자(헤드라이너)로 나서는 것도 놀랍지 않다. 국적과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 K-팝(pop)의 모습이다.
모두가 열광하는 K-팝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근 출간된 책 ‘K-팝 원론'(연립서가)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안내서다.
일본국제교양대학 객원 교수, 메이지가쿠인대학 객원 교수·특명 교수 등을 지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씨가 1970년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온 그만의 K-팝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K-팝에 대해 “‘음악’이라는 테두리를 훌쩍 넘어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700쪽이 넘는 책은 그간의 K-팝 담론과는 다른 점이 돋보인다.
미디어나 저널리즘, 연예계, 마케팅 등 주변부를 다루는 게 아니라 철저히 작품을 비춘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각종 동영상이다.
노마 히데키 씨는 “K-팝은 음악의 한 장르로 분류됐으나 이제는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그 테두리를 넘어선 아트(art·예술)가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말, 소리, 빛, 신체성이 어우러진 21세기형 종합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노마 히데키 씨는 독자들에게 책을 어떻게 소개하겠냐는 말에 “K-팝을 새롭게, 그리고 확실하게 K아트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K-팝을 단순히 음악의 한 유파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양식도, 표현 양식도 20세기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아트라는 점을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할까요?”
일본 학자가 지적 호기심에서 K-팝을 들여다본 게 아닐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책은 K-팝 뮤직비디오를 분초 단위로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표현 방법이나 의미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안무 영상에서 가장 부각되는 점으로 ‘신체성’을 꼽으며 “21세기의 오늘이 요구하는 존재의 형태”라고 짚는다.
K-팝의 언어, 즉 노랫말을 분석한 부분에서는 그의 시선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실 노마 히데키 씨는 언어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 양쪽의 피를 이어받은 그는 도쿄외국어대에서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에서 연구하기도 했다.
특히 한글을 ‘지'(知)의 관점에서 조명한 책 ‘한글의 탄생’은 2012년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주시경학술상을 받았으며, 언어학 연구자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그는 세계 각국의 팬들이 왜 한국어 목소리와 랩에 ‘꽂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히트곡 ‘마니악'(MANIAC) 가사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하나하나 짚으며 한국어 음절 끝에 오는 자음이 폐쇄되는 ‘비개방성’을 알려주는 게 하나의 예시다.
그는 “지구촌 사람들이 한국어에 열광하는 비밀 중 하나가 바로 이 음절 끝 자음의 비개방처럼 날카롭고 멋지게 리듬을 끊어 내는 성격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2년 일본에서 먼저 나온 책은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도쿄의 한국어책 전문 서점 ‘책거리’가 기획한 강연을 모아 낸 책에는 K팝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는 정보무늬(QR코드)를 실어 주목받았다.
이번에 한국어판을 내면서는 직접 그린 그림을 더하고 QR코드도 150개에서 400개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번역이 아니라 아예 새로 쓰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부터 오늘날 5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의 계보, 상황별 추천 뮤직비디오 영상 843편도 실어 ‘K-팝 가이드’ 역할을 부각했다.
학자로서, 또 K-팝 팬으로서 그의 다음 여정은 무엇일까. 그는 새로운 변화와 시도가 계속되길 바랐다.
“이게 최고 작품이다 싶으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K-팝의 세계는 끝나지 않아요. 앞으로도 그럴 테니 계속 글을 쓰면서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네요?” (웃음)
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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