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 07:20
내년 여름 첫 내한 공연 예정…”연습한 한국어와 음악 들려줄게요”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제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어요. 친가가 과거 한국을 떠나 소련으로 이주했던 역사가 있어서 후손인 제가 가족과 한국의 유대를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24)은 러시아에서 나고 자라 한국 땅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뿌리인 한국을 늘 마음에 품어왔다. 할머니가 1933년 소련으로 이주해 고려인 아버지를 둔 그는 자신의 절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목표를 이뤘다. 홍콩에서 열린 공연을 마친 직후 시간을 내 내한한 그를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르세니 문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집처럼 느껴져 신기한 기분이 든다”며 “실제로 한국에 와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다. 앞으로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르세니 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거쳐 현재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세르게이 바바얀을 사사하고 있다. 2017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우승에 이어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소니 콩쿠르 우승이 뜻밖의 일이었다고 했다. 결선이 끝나고서 수상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자에 뽑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최종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무대에서 한 번도 연주한 적 없는 곡이었다고 한다. 신선한 연주를 보여주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아르세니 문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반영됐다. 바바얀 선생님과 논의해서 곡을 정한 뒤 콩쿠르를 앞두고 몇 달간 연습했다”고 했다.
이어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을 사랑하기에 무대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즐겼다”며 “결선 무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곡가와 연결된 느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지휘가 하나 되는 경험이어서 뿌듯한 연주였다”고 돌아봤다.
아르세니 문은 콩쿠르 우승 경험이 자신의 음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늘 관객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승한 뒤로 미디어 노출이 많아져 좋다”며 “삶의 모든 경험은 음악과 연결될 수 있고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한다. 콩쿠르뿐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모든 일에서 영감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콩쿠르에서 의미 있는 이력을 쌓은 아르세니 문의 목표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찾는 것이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발자취를 따르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찾는 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아르세니 문은 “어려서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지만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것처럼 앞으로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며 “내가 누구인지 완전히 파악하게 되면 삶이 지루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는 내년 시즌을 위한 프로그램 구상도 마쳤다. 여름에는 한국에서 첫 연주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할 때는 관객들에게 연습한 한국어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들려주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등 부소니 콩쿠르 당시 연주한 아름다운 곡들을 들려주고 싶어요. 내년에 올 때는 한국어 실력도 늘어있을 거예요.”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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