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로 복귀한 박혜수 “삶 돌아보게 한 영화…위로되길”

2023-10-27 08:00

학폭 논란 후 첫 작품…”앞으로 시간 더 소중히 써야겠다 생각”
고백 앞둔 여고생 역…”세월호 피해 학생 중 한 명으로 보이려 해”
영화 ‘너와 나’ 주연 배우 박혜수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간이 휙 하고 지나갔어요. 앞으로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로 2년 8개월 만에 복귀한 배우 박혜수는 지난 공백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청춘시대'(2016), 영화 ‘스윙키즈'(2018),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등을 통해 차세대 배우로 떠오른 박혜수는 2021년 2월 활동을 중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학창 시절 그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면서다.

박혜수는 이를 부인한 뒤 관련자들을 고소했고, 피고소인 중 한 명은 최근 허위 사실을 유포해 박혜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가 인정돼 송치됐다.

‘너와 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며 복귀를 알린 그는 관객과의 대화(GV)는 물론 언론 인터뷰도 하면서 상황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지난 23일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박혜수는 “처음 일이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기간 반려견을 입양해 키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고 했다. 고려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토익과 한자 시험을 치른 끝에 10년 만에 졸업도 했다고 한다.

‘너와 나’ 역시 이 기간에 촬영했다. 조 감독은 학폭 의혹이 불거지기 전 캐스팅한 박혜수를 믿고 배우 교체 없이 촬영에 돌입해 영화를 완성했다.

박혜수는 “모든 스태프가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라면서 “감사하고 죄송한 만큼 더 열심히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영화 ‘너와 나’ 속 박혜수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영화는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다. 박혜수는 하은(김시은 분)에게 사랑 고백을 앞두고 안절부절못하는 세미를 연기했다.

박혜수는 실제 자기 모습과 세미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이 역할에 끌렸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표현이 서툴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그게 너무 서운하고 감정도 널뛴다”면서 “지금은 많이 성숙해졌지만, 과거의 박혜수는 세미 그 자체였다”며 웃었다.

동성애 연기 도전에 대해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며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세미가 하은이를 너무 좋아하는구나’ 눈치챘다”고 떠올렸다.

‘너와 나’는 두 여고생 간 첫사랑을 그린 영화기는 하지만 단순히 퀴어 영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이 시간적 배경으로, 사건 희생자와 생존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박혜수는 “참사 당시 저 역시 또래였고 남동생도 고등학생이어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큰 슬픔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그런 감정이 흐려지더라고요. 선명하던 기억이 옅어지는 걸 보면서 스스로 놀랐어요. 아마 저 같은 분들이 정말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영화가 더 만들어져야 하고요. 많은 사람이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극 중 세미는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박혜수는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고생을 연기하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세미가 정말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야 영화가 더 설득력 있으면서 아프고 절절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대사와 행동, 외모 하나하나 지금이라도 옆에 걸어 다닐 것 같은 학생의 모습으로 만들어가려 했습니다. 이 영화는 세미와 하은 두 학생을 직접 비추긴 하지만 다른 수많은 학생이 나와요. 이들 중 한 명의 이야기로 조명되기를 바랐어요.”

영화 ‘너와 나’ 속 한 장면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너와 나’는 꿈과 현실, 환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몽환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세미와 하은을 비추며 세월호 희생자에게 애도를 건넨다.

박혜수는 “영화에서 직접 죽음을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각기 다른 상처를 받았을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품으로 제 삶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있고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요. 떠나보낸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도 상기해줬죠. 영화가 말하는 건 결국 사랑이에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순간 어디에도 사랑이 있다는 걸 ‘너와 나’로 느끼면 좋겠습니다.”

rambo@yna.co.kr